세계일보

검색
“별채 정원 깊어 여름 돗자리 시원하고(別院深深夏簟淸)/ 활짝 핀 석류꽃 빛이 발을 뚫고 들어온다(石榴開遍透簾明)/ 나무 그늘 마당 가득한 한낮(樹陰滿地日當午)/ 꿈에서 깨어나니 때마침 꾀꼬리 소리 들린다(夢覺流鶯時一聲).”

중국 송나라 때 소순흠(蘇舜欽·1008~1048)의 시 ‘여름(夏意)’이다. 여름날 오후의 나른함, 낮잠을 자고 난 뒤의 한가함, 꽃과 풀과 나무와 꾀꼬리 소리가 더위를 몰아내는 정경이 살포시 떠오른다. 그런데 요즘처럼 아파트나 회색 빌딩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이런 시를 보면 낯설 것이다.

여름휴가철이다. 휴가의 ‘휴(休)’자는 사람 ‘인(人)’자와 나무 ‘목(木)’자가 합쳐져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는 형상을 그려내고 있다. 자연에서 몸·마음의 여유와 휴식을 찾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산과 계곡, 강과 바다가 주된 휴가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도회지인이 주로 찾는 휴가지의 농어민은 마음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가뭄, 수해, 농산물 폭락 등으로 생계마저 암울하기에 그렇다.

조선 전기의 대문장가이자 학자, 사림파의 태두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 쓴 ‘낙동요(洛東謠)’를 보자. “쌀독은 비고 도토리마저 떨어졌는데(缾甖已罄橡栗空)/ 강가에선 풍악 울리며 살찐 소를 잡네(江干歌吹椎肥牛)/ 조정의 사자는 유성같이 지나치니(皇華使者如流星)/ 길가 해골에게야 누가 이름이나 묻겠는가(道傍觸髏誰問名).”

강은 이처럼 백성의 고통을 직시하고 경세관을 가다듬는 곳인 동시에 심신 수양의 단련장이기도 했다. 점필재는 이에 관한 시도 썼다. “흰 새는 배를 맞이하고(白鳥如迎棹)/ 푸른 산은 너그러이 객을 보내네(靑山慣送賓)/ 맑은 강에는 한 점 꿰맨 자국도 없으니(澄江無點綴)/ 내 몸의 거울로 삼으려네(持以律吾身).”(‘낙동나루’의 일부)

여하튼 열섬의 도시에 염증을 더해가는 여름, 선인들의 시심이 흐르는 산천과 마을로 휴가를 떠나 보자. 찌든 일상에 파묻혀 시들어 버린 우리의 빛나는 감성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심신을 맑고 건강하게 재충전하자. 휴식은 ‘재생의 기회’이다.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원장

夏簟淸 : ‘여름 돗자리가 시원하다’라는 뜻.

여름 하, 대자리 점, 시원할 청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