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서정민의세계,세계인] 같은 옷 같은 장소의 휴가

관련이슈 서정민의 세계, 세계인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7-08-07 21:09:53 수정 : 2017-08-07 23:43:2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유럽에서 휴가는 개인의 확고한 권리 / 우리는 주변사람 의식 고급여행 선호
허름한 자주색 체크무늬 셔츠, 헐렁한 베이지색 면바지, 하얀색 모자 등 이탈리아 북부 산악휴양지 쥐트티롤 줄텐에서 휴가를 보내는 한 여성의 모습이다. 역시 수수한 복장의 남편과 산보를 하고, 맥주와 커피도 즐긴다. 묵고 있는 호텔은 현지 4성급 호텔이다. 3주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부부의 모습이다. 두 사람은 9년 연속 같은 장소를 찾았다. 그리고 메르켈 총리의 복장은 5년 동안 같았다.

이탈리아 북부의 또 다른 휴양지 데센자노 델 가르다의 호숫가에서 분홍색 셔츠형 원피스를 입은 한 여성이 청바지 차림의 남편과 산책을 즐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부부다. 메이 총리가 입은 원피스는 영국의 중저가 브랜드 ‘넥스트’ 제품이다. 가격은 우리 돈으로 3만8000원 정도다. 메이 총리는 옷 잘 입기로 소문난 정치인이다. 그러나 휴가 기간 중에는 편하고 저렴한 박스형 원피스를 입는다. 철저히 한가로움과 편안함을 즐기는 개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유럽의 정치·경제를 주무르는 두 여성 지도자의 휴가 모습이다. 난민 유입, 테러, 유럽연합(EU) 탈퇴 협상 등 유럽의 난제를 주도하는 인물들이다. 무거운 정치·경제적 사안이 있음에도 어김없이 휴가를 떠난다. 특히 메르켈 총리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있지만 거르지 않고 3주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만약 한국의 정치인이 선거 두 달 전에 휴가를 떠난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서 휴가는 정치도 여론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개인의 확고한 권리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휴가는 철저히 보장된다. 유럽인들은 여름에 장기휴가를 떠난다. 열심히 일하고 가장 날씨가 좋은 여름에 재충전의 기회를 갖는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도 겨울방학은 짧고 대신 여름방학은 길다. 가족이 함께 휴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 것이다. 화목한 가정이 업무 능률을 제고하고, 가족 간 대화가 인성형성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축적된 경험과 사회적 합의가 도출돼 있다.

유럽인들은 휴가가 개인의 철저한 권리라는 점에서 진정한 마음의 안식을 취하려 한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진정한 휴식과 즐거움을 추구한다. 따라서 부담스러운 고급여행이나 사치스러운 복장도 필요 없다. 가족과 조용한 휴양지에서 평소대로 검소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문화에서 성장한 독일과 영국의 여성 지도자 역시 평범한 유럽 중년 부부의 휴가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언론을 의식해 연출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소박하고 평온한 휴식을 매년 갖는다.

우리의 해외여행 풍경과는 상당히 다르다. 멋지게 차려입고 예쁜 사진을 남겨야 하고 이를 보여주려 한다. 이 때문에 화려한 고급여행을 선망한다. 주변사람을 너무 의식하는 것이다. 잘 바뀌지 않는 체면문화다. 직장에서도 휴가 내려면 눈치 보기 일쑤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경직된 업무 중심의 직장문화다. 휴식은 생산성 제고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정치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