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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검찰, 댓글수사 왜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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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08 21:33:07 수정 : 2017-08-08 21: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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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벽’에 막혀 제자리걸음속
황교안 당시 법무 사사건건 훼방
‘최순실 게이트’ 맞먹는 중대범죄
검찰, 철저히 파헤쳐 명예회복을
4년 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지 달포가량 지났을 때다. 막 취임한 채동욱 검찰총장은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수사를 놓고 번민에 빠졌다. ‘본전’도 못 찾는 수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숙고 끝에 의혹을 해소키로 하고 막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에서 여주지청장으로 발령이 난 윤석열 지청장을 급히 대검으로 불러들였다.

서둘러 도착한 대검 8층 총장실의 공기는 매우 차가웠다. 채 총장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아무런 말 없이 담배 연기만 연신 내뿜었다. 그렇게 침묵이 10여분 정도 흐른 뒤 채 총장이 다짜고짜 윤 지청장에게 수사팀을 맡아 국정원 댓글 의혹을 파헤치라는 ‘특명’을 내렸다.


문준식 사회부장
박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맥을 같이 하는 전 정권을 향해 칼을 들이대라는 것이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자칫 정권에 미운털이 박혀 공직 생활을 접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윤 지청장은 주저하지 않고 특명을 따르기로 했다. 결국 그는 ‘섣부른 판단’ 땜에 시련을 겪었다. 수사팀을 벼랑으로 내몬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고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박 후보와 박빙의 대결을 이어가던 민주당에 타격이었다. 이에 민주당은 국정원 직원이 은신하던 오피스텔을 급습한 데 이어 직원을 경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경찰은 대선을 이틀 앞둔 12월 16일 밤 중간수사 결과라면서 “국정원 대선 관련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박 후보에게 면죄부만 줬다. 화가 난 민주당이 이듬해 4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수사가 본격화됐다. 선봉에는 윤 지청장이 섰다.

그러나 수사는 ‘권력의 벽’에 막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수사를 지도 감독해야 할 황교안 법무장관은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반대하며 사사건건 훼방을 놓았다. 정치검찰은 더욱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이리저리 차인 수사팀은 원 전 원장 개인 비리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이뤄지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수사팀에 든든한 방패막이였던 채 총장이 취임 5개월 만에 혼외자 건으로 청와대에 의해 쫓겨났다. 윤 팀장도 채 총장이 찍어내기로 낙마한 뒤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압수수색했다는 이유로 ‘조직의 쓴맛’을 봐야 했다. 급기야 고검 검사로 좌천돼 지방을 전전했다.

부팀장이던 박형철 공공형사수사부장(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도 3년째 좌천 인사가 지속되자 지난해 1월 옷을 벗었다. 수사는 원 전 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그쳤다. 수사가 변죽만 울린 까닭이다. 성과라면 대선 전까지 국정원 직원 9명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1900여 건의 정치·대선 관여 글을 올리고 1700여 차례 댓글에 대한 찬반 표시를 올린 사실을 밝혀낸 게 전부였다.

권력의 장막에 가려 묻힐 뻔했던 국정원의 온라인 여론 조작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검찰이 다시 바빠지고 있다. 여론 조작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총동원돼 갖은 압력을 넣은 이유다. 국정원의 국기문란은 이렇다. 2009년 5월부터 심리전단 관리하에 ‘알파 팀’ 등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했고,이 팀은 총선과 대선이 있던 2012년 말에는 30개 팀에 3500개 아이디를 사용할 정도로 조직 규모와 활동 범위가 대폭 확대됐다. 이들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트위터에 친정부 성향 글을 퍼날라 선거 여론을 조작하고 민의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맞먹는 중대범죄다.

어쨌든 외압에 맞서다 고초를 겪었던 윤 서울중앙지검장이 다시 수사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질긴 악연이다.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과거와 달리 장애물도 사라졌다. 우선 국정원 댓글 사건 재판 4년여 동안 일부 증거능력을 둘러싸고 다퉜으나 이제 거대한 음모와 공작의 실체가 윤곽을 드러낸 이상 전면 재수사가 불가피하다. 원 전 원장의 윗선 즉 이명박 전 대통령 조사는 물론 박근혜정부의 수사 외압 등에 대해서도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정권이 아닌 국민만을 바라보며 낱낱이 파헤치기 바란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나아가 실추된 검찰 신뢰회복의 계기로도 삼길 바란다.

문준식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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