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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타이타닉호 침몰은 샴페인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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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11 06:00:00 수정 : 2017-08-10 20: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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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와인’ 샴페인 고장 샹파뉴를 가다
포도가 천천히 익어가는 7월말의 프랑스 샹파뉴 랭스의 전원 풍경.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친 포도밭이 장관이다. 상파뉴(프랑스)=최현태기자
영국과 프랑스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백년전쟁(1337∼1453) 말기이던 1429년 3월 8일. 불과 17살의 어린 소녀 잔다르크는 루아르의 시농성에 도피해있던 프랑스 왕 샤를 7세를 찾아갑니다. 그는 대관식을 치르지 못해 왕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신세. 잔다르크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왕을 어렵게 설득, 군대를 일으켜 영국군이 점령하던 랭스(Reims)를 되찾죠. 잔다르크의 도움으로 샤를 7세는 대관식을 치르고 정식으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대관식이 열린 곳은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랭스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Reims)입니다.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이 열리던 랭스 대성당 전경.
정면에서 본 랭스 대성당.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다.
프랑스 파리 동역에서 떼제베를 타고 45분을 달리니 동북쪽으로 142km 떨어진 샹파뉴 아르덴주 베슬강변의 랭스가 나타납니다. 랭스는 ‘왕의 도시’로 유명합니다. 490년 프랑크왕 클로비스가 세례를 받은 뒤 샤를10세까지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이 랭스 대성당에서 거행됐기 때문이랍니다. 최초의 성당이 지어진 것은 400년쯤이지만 1210년 화재로 불타버려 다음해부터 100년에 걸쳐 건설됐습니다. 프랑스 고딕양식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랭스 대성당은 정교한 조각상 2300개와 성당 내부의 지름 12.5m 크기의 대형 장미창, 마르크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답니다.

그러나 전쟁 영웅 잔다르크는 성당 밖 구석에 조그마한 동상으로 남아있을 뿐이네요. 동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샤를 7세에게 배신당하고 마녀로 몰려 19살에 화형당한 그의 기구한 인생이 슬픔으로 밀려옵니다.
랭스 대성방 주면에 세워진 잔다르크 동상.
샹퍄뉴가 발달한 것은 로마시대때부터입니다. 로마군들이 프랑스를 오가면서 교역로로 샹파뉴가 활용됐고 됐고 샹파뉴 토양에 많은 쵸크를 캐내 팔면서 교역이 활발하게 이뤄졌다고 합니다.

현재 샹파뉴(Champagne)가 유명한 것은 이런 역사보다 사실 와인때문입니다. 세계 최고급 와인으로 평가받는 샴페인이 생산되는 곳이 바로 최고급 그랑크뤼 포도밭이 몰려있는 랭스와 에페르네 등으로 구성된 샹파뉴이기 때문이죠. 입안에서 터지는 버블과 잘익은 사과향이 요즘같이 무더운 한여름이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샴페인은 샹파뉴에서 생산되는 와인에만 붙일 수 있는 이름입니다. 상파뉴의 영어식 발음이 샴페인이랍니다. 샴페인은 이처럼 왕들의 대관식이 열리던 역사 때문에 ‘왕의 와인’로 불립니다.

샴페인을 둘러싼 다른 일화들도 많답니다. 프랑스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뚜아네트는 프랑스 혁명때 국고낭비와 반혁명 시도로 처형되기 직전에 샴페인을 한잔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샹파뉴 지방에는 구전으로 전해내려 오고 있습니다. 또 모든 배들은 첫 출항할때 샴페인 병을 배에 던져 깨는 세례를 했는데 침몰한 타이타닉은 이 세례을 하지않은 유일한 배여서 침몰하는 저주를 받았다는 얘기도 있답니다. 
샹파뉴 에페르네의 언덕에 펼쳐진 포도밭 풍경.
서울의 낮기온이 35도를 넘기며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말 샹파뉴를 찾았습니다. 맑고 투명한 파란 하늘아래 아름다운 구릉지대에 끊임없이 펼쳐진 포도밭은 렌즈만 갖다대면 화보가 돼버립니다. 기온은 한낮에도 25∼27도에 머물렀고 밤에는 재킷을 걸쳐야 할정도로 선선해 그야말로 여기가 파라다이스처럼 느껴집니다.

샹파뉴 하우스들은 랭스와 랭스에서 승용차로 30분정도 떨어진 에페르네를 중심으로 몰려있어 두 곳을 집중적으로 둘러 보면됩니다. 샴페인의 역사를 얘기할때 잔다르크 만큼 유명한 두 명의 여인을 빼놓을 수 없답니다.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와 포므리(Pommery) 여사에요. 오늘날 전세계인이 즐기는 최고급 와인의 대명사 샴페인의 ‘레시피’를 이 두 여성이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때문이죠. 
뵈브 클리코 하우스에 설치된 뵈브 클리코 퐁사르당 여사 초상화.
샴페인은 버블이 없는 일반 스틸와인과는 양조과정이 좀 달라요. 1차 발효가 끝난 뒤 병에 담아 효모와 함께 두는 2차 발효 과정을 거칩니다. 샴페인은 이 과정에서 효모가 와인에 녹아들면서 ‘효조자가분해향’이라 부르는 빵의 풍미 등이 만들어집니다. 문제는 효모찌꺼기. 효모는 당분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알코올 도수가 12도 정도로 오르면 효모는 죽고 병속에 찌꺼기가 남게 됩니다. 과거에는 이 찌꺼기를 제거하는 방법을 몰라 샴페인이 뿌연 빛깔이었고 반드시 침전물을 거르는 디캔팅을 거친 뒤 마셔야 했다고 하네요.

이런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한 이가 뵈브 클리코랍니다. 그는 1816년 효모 찌꺼기를 병을 천천히 돌리며 병 입구로 모으는 ‘흐뮈아쥬(Remuage)’와 병목을 차가운 소금물에 담가 급속 냉각한 뒤 효모 찌꺼기를 제거하는 ‘데고르즈망(Degorgement)’을 최초로 개발해 샴페인 양조 과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인물입니다. 영하 20도정도의 차가운 소금물에 병목을 담가 급속 냉각시킨 뒤 뚜껑을 제거하면 탄산가스 압력으로 응고된 효모 찌꺼기가 밀려나옵니다. 또 흐뮈아쥬를 할때 45도 각도로 구멍 낸 틀에 샴페인 병을 거꾸로 걸어놓고 조금씩 손으로 돌리면서 효모 찌꺼기를 모으는 선반 뿌삐트르(Pupitre)도 그의 작품입니다. 
비온 뒤 쌍무지개가 뜬 뵈브 클리코 하우스 입구.
뵈브 클리코 하우스 동굴 셀러 건물.
또 1818년 로제 샴페인을 처음으로 선보였고 샴페인 병 레이블에 컬러를 넣은 것도 뵈브 클리코가 최초에요. 19세기 샴페인은 병에 레이블이 아예 없어서 코르크로 샴페인을 구분했다고 합니다. 당시 샴페인은 매우 달았는데 드라이한 샴페인은 흰색 레이블을 붙여 스위트한 샴페인과 구분했습니다. 나중에는 멀리서도 구분이 쉽고 밤에 촛불로도 식별이 쉬운 계란 노른자 색깔로 바꿨고 이는 뵈브 클리코의 상장 컬러가 됐답니다. 현재 색깔은 귤색깔, 주황색과 비슷하죠. 뵈브 클리코는 이 색깔을 특허 등록해 뵈브 클리코만이 이 컬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뵈브 클리코는 또 포도 품질이 아주 뛰어난 해의 포도로만 빚는 빈티지 샴페인도 세상에 처음 내놓았어요.

뵈브는 미망인이라는 뜻이랍니다. 은행가 및 직물상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필립 클리코(Philippe Clicquot)는 1772년 가문의 이름으로 샴페인 하우스를 설립했고 사업을 아들 프랑수아(Francois)에게 물려줬죠. 하지만 그는 일찍 사망해 1805년 아내인 바브 니콜 클리코 퐁사르당(Barbe Nicole Clicquot Ponsardin)이 가업을 잇게 되는데 그의 나이 불과 27세였습니다. 당시 샴페인 양조와 경영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지만 그는 당차게 양조기술과 품질의 혁신을 이끌며 샴페인 산업의 성장을 주도했습니다. 
뵈브 클리코 브뤼 넌 빈티지 샴페인.
샹파뉴는 기후가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해의 포도즙을 섞어서 샴페인을 만든답니다. 이런 샴페인들을 그 해의 포도로만 만드는 빈티지 샴페인과 구분해 ‘넌 빈티지’ 샴페인으로 부르죠. 뵈브 클리코는 그해의 포도즙 60∼70%에 12∼17개 빈티지를 블렌딩해요. 현재 뵈브 클리코 와인 저장 셀러에는 17년동안의 빈티지별, 품종별, 밭단위별로 구분된 베이스 와인이 저장돼 있는데 무려 400여종에 이른다는 군요. 뵈브 클리코 하우스에서 1996 빈티지 피노누아 100% 등 다양한 빈티지의 피노 누아, 샤르도네, 피노 뮈니에 등 2차 병발효를 하기 전의 베이스 와인들을 직접 테이스팅해봤습니다. 샴페인은 이 3가지 품종으로만 만듭니다. 
2차 병발효하기 전의 빈티지별 품종별 베이스 와인들.
특히 샤도네이는 입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대단하더군요. 입사이로 느껴지는 산도가 짜릿해 굉장히 큰 샤도네이의 느낌을 줍니다. 마치 부르고뉴 최고급 화이트 와인 같았답니다. 뵈브 클리코의 와인메이커이자 양조학자인 베르트랑 바로뀌에(Bertrand Varoquier)씨는 “샴페인을 숙성시키는 과정보다 베이스 와인을 만들고 이를 섞는 블렌딩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샴페인의 본질인 ‘와인의 영혼’을 표현하는 과정이기때문이라고 하네요. 와인의 영혼이라니 정말 멋진 말이네요. 무엇보다 베이스 와인을 잘 만들고 이를 블렌딩하는 최고의 기술이 있어야 영혼과 육체가 잘 결합된 결정체, 최고의 샴페인이 탄생한다는 얘기겠지요. 뵈브 클리코는 모든 베이스 와인들을 말로라틱(젖산발효)까지 완벽하게 마친 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보관을 합니다. 바로뀌에씨는 “말로라틱을 하면 산도가 부드러워지고 편안해 집니다. 말로라틱을 안하면 무겁고 거친 느낌의 와인이 나오죠. 뵈브 클리코는 다가가기 편안한 느낌을 주기 위해 말로라틱을 100% 하죠”라고 강조합니다.
뵈브 클리코의 와인메이커이자 양조학자인 베르트랑 바로뀌에(Bertrand Varoquier).
이런 뵈브 클리코 혁신 DNA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자는 아직 한국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그야말로 ‘신상’ 뵈브 클리코 엑스트라 브뤼 엑스트라 올드(Extra Brut Extra Old)를 테이스팅 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이 샴페인은 그해의 포도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답니다. 대신 1988, 1996, 2006, 2008, 2009, 2010년까지 포도농사가 아주 좋았던 6개 빈티지만으로 블렌딩한 특별한 샴페인입니다. 이런 블렌딩은 거의 찾아 보기가 힘들죠. 마치 빈티지 샴페인을 하나로 모은 ‘어벤져스’ 같은 샴페인이라고 할수 있겠네요. 스틸 탱크에서 섞어서 그 상태로 3년을 보낸 뒤 병숙성 3년을 거칩니다. 바로뀌에씨는 “잔당은 3g일 정도로 매우 드라이해서 순수함이 느껴지죠. 뵈브는 항상 남성적인 와인을 만들어내는데 피노 누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뵈브 클리코 엑스트라 브뤼 엑스트라 올드.
뵈브 클라코는 샹파뉴의 그랑크뤼 포도밭 17곳중 12곳, 프리미에크리 44곳 중 18곳의 비옥한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1972년 뵈브 클리코는 창립 200주년을 맞아 샴페인 ‘라 그랑 담(La Grand Dame)을 내놓았는데 이는 ‘위대한 여성’이란 뜻으로 뵈브 클리코가 샴페인 역사에 남긴 업적을 기리고 있답니다. 라 그랑담은 빈티지 샴페인만 생산됩니다. 2006의 경우 피노 누아는 그랑크뤼 포도밭 5곳에서, 샤르도네는 그랑크뤼 3곳의 포도로만 만드는 뵈브 클리코 최고의 와인입니다. 뵈브 클리코는 대체로 남성적이지만 이 와인은 클리코 여사에게 헌정하는 샴페인이라 여성같은 섬세함이 돋보이면서 조용하고 천천히 가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뵈브 클리코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때문에 ‘성공한 여성의 샴페인’으로 불립니다. 좋은 일이 있는 여성에게 선물하면 의미가 매우 깊을 것 같네요.
포므리 하우스 전경.
포므리 하우스 내부의 샴페인 캡실 대형 조형물.
포므리 샴페인들.
포므리 여사는 드라이한 샴페인을 최초로 개발한 인물입니다. 샴페인 하우스는 1836년에 설립됐는 그 역시 39살이던 1858년에 남편을 여의고 샴페인 하우스 경영에 직접 나서게 됩니다. 1800년대 샴페인은 1리터당 잔당이 150g으로굉장히 달았어요. 하지만 포므리는 영국과 미국 등 상류사회에서 달지 않은 샴페인을 원하다는 사실을 알고 세계 최초로 브뤼(Brut)라는 드라이한 샴페인을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현재 브뤼 샴페인의 당도는 12g 이하입니다. 샴페인은 데고르즈망을 통해 효모 찌꺼기를 빼낸 뒤 손실된 와인과 당분 추가하는 도사쥬(Dosage)를 하는데 이때 샴페인의 당도가 결정된답니다. 아마 그가 없었더라면 현대인들은 아직도 달콤한 샴페인만 마시고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업적때문에 포므리는세계 3대 샴페인으로 유명하지만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에요. 덕분에 가격은 그리 높지 않아 비교적 부담없이 마실 수 있습니다.
샹파뉴 랭스 미슐랭 1스타 오스뗄레리 라 브리끄뜨리(Hostellerie La Briqueterie)
금강산도 식후경. 샹파뉴는 샴페인의 고장이며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즐비한 미식의 천국이기도 합니다. 가스트로미 레스토랑을 찾아 한국보다 비교적 착한 가격에 샴페인까지 곁들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답니다. 에페르네에서 샴페인 하우스 오너 등 관계자들이 많이 찾는 곳은 미슐랭 1스타 오스뗄레리 라 브리끄뜨리(Hostellerie La Briqueterie). 같은 이름의 5성급 호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푸아그라와 화이트 발사믹으로 마리네드한 새우와 게, 팬 프라이드한 대구, 파마산 치즈와 감자를 곁들인 스테이크 등의 요리와 다양한 디저트를 오로지 샴페인만으로 즐길 수 있어요. 
레스토랑 르 비뉴(Les Vignes)에서는 창밖의 포도밭을 감상하며 샴페인과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르 비뉴 메뉴.
랭스 시내에서 10분거리에 있는 르 비뉴(Les Vignes)는 포도나무라는 레스토랑 이름 그대로 높은 언덕에 있어서 랭스의 아름다운 포도밭과 전원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볼거리가 장관입니다. 창문 너머 드넓게 펼쳐친 포도밭을 바라보며 코스 요리와 샴페인을 비롯한 다양한 와인을 즐길수 있어요. 특히 이곳은 요즘 와인업계의 핫이슈인 내추럴 와인도 맛볼 수 있습니다. 랭스의 르 쟈댕 브라세리(Le Jardin Brasserie)도 수국이 가득이 핀 입구의 정원이 아름답습니다. 샴페인 소스를 곁들인 농어 필레 등 생선 요리가 맛있고 어린 송아지, 립 스테이크도 즐길 수 있답니다. 특히 쟈댕은 잔 와인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어요. 샴페인은 10.5유로, 화이트 와인은 4.5∼16유로, 레드 와인은 5.5∼10.5유로로 부담없이 요리와 곁들일 수 있답니다. 

샹파뉴(프랑스)=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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