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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회사 마당에 대형 태극기
끝까지 참호 지킨 6·25 전투병
광장의 反사드 시위 군중보다
작은 실천이 진정한 나라 사랑
서울 강남 한복판에 태극기가 365일 펄럭이는 곳이 있다. 이디야커피 본사 앞마당이다. 다른 깃발 없이 태극기 하나만 오롯이 창공에 나부낀다. 커피 파는 회사에서 태극기라니! 경영자는 무슨 생각으로 회사 정면에 대형 태극기를 걸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무는 사이 1950년 어느 병사의 모습이 스냅사진처럼 뇌리를 스쳤다.

6·25전쟁이 터진 지 나흘 뒤의 일이었다. 미국 극동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이 급히 지프차를 타고 흑석동 부근으로 왔다. 수도 서울은 이미 함락됐고, 북한군 포탄의 굉음이 지축을 흔들었다. 쌍안경으로 한강 전선을 관찰하던 맥아더가 참호 속에 있던 국군 일등중사에게 물었다.


배연국 논설실장
“하사관, 자네는 언제까지 그 참호 속에 있을 셈인가?” 일등중사가 또박또박 대답했다. “옛! 각하께서도 군인이시고, 저 또한 대한민국 군인입니다. 군인이란 오직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저의 상관으로부터 철수명령이 내려지든가, 아니면 제가 죽는 순간까지 이곳을 지킬 것입니다.” “지금 소원이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맨주먹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무기와 탄약을 도와주십시오. 그뿐입니다.” 맥아더는 병사의 손을 꼭 잡고는 통역장교에게 말했다. “이 씩씩한 용사에게 전해 주시오. 내가 도쿄로 돌아가는 즉시 미국의 지원군을 보내주겠다고 말이오. 그리고 그동안 용기를 갖고 싸워 주기를 바란다고.” 도쿄로 돌아간 맥아더는 곧바로 트루먼 대통령에게 건의해 지원군 파견 허락을 받아냈다.

역사에는 원래 가정이 없다. 하지만 역사에서 교훈을 얻기를 원한다면 기꺼이 가정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만약 국군 병사의 애국심이 없었다면 맥아더가 한국인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국 군인들을 희생하는 용단을 그토록 빨리 내릴 수 있었을까. 전쟁의 변곡점을 만든 일등중사는 바로 4년 전에 세상을 떠난 신동수씨다. 그는 전쟁이 터지자 스무 살에 입대를 자원했다.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무릎까지 절단했지만 한 번도 원망의 말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역사적 대사건이 한 사람의 정성으로 바뀌는 현상을 종종 목도한다. 병사 신동수의 행동이 나라의 운명을 바꿨듯이 말이다. 신라의 통일전쟁 역시 어린 화랑의 희생으로 대전환을 맞았다. 김유신 장군의 조카 반굴은 “나라에 충성하라”는 아버지의 언명에 백제의 결사대 앞에 섰다. 산술적으로 5000대 1이었다. 청년은 곧장 적진의 창칼 앞으로 돌진했다. 한 사람이 붉은 최후를 마치자 또 한 사람이 나섰다. 이번엔 귀족 자제 관창이었다. 목만 돌아온 관창의 뒤를 수많은 신라 병사들이 따랐고, 그것이 승리의 도화선이 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운을 바꾼 것은 수천의 군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충심이었다. 6·25전쟁 이후 최악의 안보위기라는 요즘,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이런 애국심이 아닐까. 성주 사드 반대시위 현장에서나 광복절 서울 도심에 등장한 다수의 무리를 본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가 아무리 컸어도 가슴 먹먹한 울림이 없다. 군중의 함성만 있고 애국의 혼이 없기 때문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이디야커피 문창기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아 그거요? 일전에 미국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본사에 갔더니 커다란 성조기가 걸려 있더라고요. 그때 나도 회사 건물을 지으면 태극기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문 회장은 그 다짐대로 작년 봄 건물을 사들이자 당장 실천에 옮겼다. 토종 브랜드로 세계를 제패한다는 염원을 담아 ‘대한커피 만세!’란 글씨가 새겨진 돌을 태극기 앞에 함께 세웠다.

나라 사랑은 거창한 애국심만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안중근 의사나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에 목숨을 바칠 순 없을 테니까. 그분들의 위대한 충심은 가슴에 담고, 실천은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내년 광복절엔 태극기 하나라도 문 앞에 내걸자.

오늘 나는 알았다. 지구 저편에서 건너온 검은 커피에도 ‘붉은 마음’이 녹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작지만 큰 실천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지키는 든든한 참호가 된다는 사실을.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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