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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장들의 ‘대리인 문제’는 조직 신뢰 허물고 국민에 배신감 / 앞으로 그자리 꿈꾸는 인사들은 먼저 세치 혀부터 단속해야 할 것 금융감독원 ‘금수저 특혜 채용’이 드러난 건 지난해 10월이다. 국회 국정감사 당일 세계일보가 단독 보도했다.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그 충격의 여진이 금감원 조직을 흔들고 있다. 관련 인사들에 대한 1심 선고 공판(25일)을 앞두고 블라인드앱이 시끌시끌하다.

“어이가 없네. 애초 김수일만을 노린 감사이고 수사였어.” 익명의 글이 김수일 부원장을 두둔한다. 그는 채용비리 당시 인사 담당임원(부원장보)이었다. 검찰은 그에 대해 업무방해·직권남용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그를 주범으로 본 것인데, 김 부원장은 여전히 무죄를 주장한다. 특혜 채용과 관련해 “보고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결심 공판 최후진술에서 “부당한 사건에 조금이라도 연루됐다면 주저 없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벌어져도 창피하지도 않은가, 이젠?” 또 다른 익명의 글이 반박한다. 김 부원장이 이제라도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채용비리 연루 3인방 중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상구 부원장보(당시 총무국장)는 작년 말 내부감찰 결과가 나오자 사임했고, 당시 인사팀장은 보직 해임되어 현재 대기발령 상태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채용비리 진실을 놓고 이들은 그간 진흙탕에서 뒹굴었다. 금감원 사람들도 그 싸움판에 뛰어들어 바짓가랑이가 흙탕물에 흠뻑 젖어버렸다. “지시를 이행한 것”이라는 이 전 부원장보와 “보고받은 적 없다”는 김 부원장의 대립과 갈등이 조직을 이전투구의 장으로 끌어들인 꼴이다. 그렇게 단 한 건의 채용비리가 조직 전체를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런데도 이 엄청난 일의 ‘원인 제공자’, 최수현 당시 금감원장은 무탈하다. 블라인드앱에는 그가 법적 책임을 피해간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글들도 올라온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최 전 원장도 조사했으나 그가 특혜 채용에 개입한 증거를 찾지 못해 불기소 처분했다.

“잘 챙겨봐라.” 최 전 원장의 지시는 이랬다고 한다. 행정고시 동기이자 절친(임영호 전 의원)의 아들이 지원한다니 신경써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잘 챙겨보라”는 말을 ‘특혜 채용 지시’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저 합격 여부를 챙겨보라는 의미였을 수 있다”고 한 인사는 말했다. 그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나비 날갯짓 같은 그의 지시는 태풍이 되어 조직을 강타했다. 인사라인에선 임 전 의원의 아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성적을 조작하고 규정을 바꿨다. 반칙도 서슴지 않은 과잉충성이었다. 그 결과 금감원의 신뢰는 심각하게 훼손됐고, 조직은 1년이 다 되도록 반목과 갈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소수의 일탈과 반칙의 대가를 조직 전체가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중이다.

어디 금감원뿐인가. 공공기관 전체로 보면 이 사건은 빙산의 한 조각일 뿐이다. 훨씬 더 죄질이 나쁜 채용비리가 공공기관 곳곳에서 꼬리를 문다. 친박 실세가 개입한 중소기업진흥공단 채용비리는 일례다. “그냥 (채용)해.”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기 지역구사무소 인턴 출신을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밀어넣으려고 박철규 중진공 이사장(구속)을 윽박지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최 의원은 “만난 사실조차 없다”고 부인하지만 “최 의원이 합격시키라고 지시했다”는 게 박 전 이사장의 진술이다. 심지어 공공기관의 비리를 감시해야 하는 감사원조차 전·현직 고위인사 자녀 특혜 채용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주주에게 위임받은 전문경영인은 회사의 장기적 가치를 외면하기 십상이다. 대신 임기 중의 단기 성과에 집착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 자원을 오남용하는 유혹에 빠진다. 이른바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다.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대리인 문제가 민간기업에 국한한 문제가 아닐뿐더러 그 폐해도 훨씬 더 심각한 것임을 보여준다. 공공기관장들이 2∼3년 임기 중 저지른 ‘대리인 문제’는 조직의 신뢰를 허물고 주인인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배신감을 안기기 때문이다.

금수저 채용비리가 드러났을 때 한 네티즌은 “채용비리는 살인죄”라며 분노했다. “잘 챙겨보라”는 말 한마디의 결과였다. 이제 곧 문재인정부의 공공기관장 인사가 이어질 것이다. 그 자리를 꿈꾸는 인사들은 세치 혀부터 단속해야 할 것이다. 최 전 원장이 훌륭한 반면교사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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