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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옮겨 갈 땅이 없는 자’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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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21 21:34:08 수정 : 2017-08-21 21: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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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버리는 카드” 뜻 담은
주한미군 철수론
모든 것을 건 미·북 대결
空論으로 위기 헤쳐 갈 수 있나
위기 시침은 빠르게 돌고 있다. “미 본토와 서울 불바다”, “군사옵션 장전 완료”. 평양과 워싱턴을 오가는 말 폭탄은 요란하다. 생각은 말을 낳고, 말은 행동을 낳는 법 아니던가. 위험하다. 요 며칠 새 좀 잠잠해졌다. 괜찮아진 걸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반도 위기를 알리는 시침은 어디쯤 와 있을까. 답을 찾자면 미국과 북한을 꿰뚫어 봐야 한다. 


강호원 논설위원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입이 방정맞다. 결국 쫓겨났다. 사직서를 낸 날은 지난 7일. 홀가분했기 때문일까, 16일 깜짝 놀랄 말을 했다.

“1000만명의 서울시민이 개전 30분 만에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정식을 풀 때까지 군사적 해결책은 없다.” “내 모든 생각은 중국과의 경제전쟁에 가 있다.” “중국이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북핵을 동결시키는 대가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외교적 딜을 고려해야 한다.”

화들짝 놀란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미국도 와글와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멘토라는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북한에 이상한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백악관에 있으니 국가안보팀 능력이 약해진다.” 미 정부는 해명에 진땀을 뺐다. 격노했다는 트럼프 대통령. 무엇에 화가 났을까. “군사적 해법은 없다”는 말이 격노를 부른 씨앗이다. ‘분노와 화염’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되짚어볼 것이 있다. 배넌의 말은 혼자만의 엉뚱한 생각일까. 그럴 턱이 없다. 그는 트럼프정부를 움직인 아이디어뱅크다. 북한을 손볼 오만가지 방법이 백악관 탁자에 올려져 있을 것은 빤한 일이다. 배넌의 말은 그중 하나다. 액면 그대로 보자면 배넌의 생각은 오히려 전쟁 반대론에 가깝다. 그를 비판한 그룹이 강경론을 주도하는 매파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백악관에 예방타격론이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키워드 하나가 더 있다. ‘주한미군 철수’. 배넌이 처음 한 말도 아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똑같은 말을 했다. 키신저는 통일을 전제로, 배넌은 북핵 동결을 전제로 한 것이 다를 뿐이다. 무슨 의미를 담은 주장일까. 북핵 동결을 전제로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면 승자는 누구일까. 북·중이다. 6·25전쟁 후 60년 이상 이어온 판세를 뒤바꿀 계기가 될 테니.

무엇을 노린 철수론일까. 감춘 패가 있다. 볼모로 잡히다시피 한 주한미군. 우리 정부가 바뀐 후 사드 배치 하나 여의치 않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가 아닐까. 북한 공격을 위한 후퇴. 배넌식 철수론에서 한국은 ‘버리는 카드’다. 미국은 혹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이익을 지켜주지 않으니 한국을 지켜줄 의무도 없다.”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 미국은 모든 것을 걸고 싸우기 시작했다. 중국과의 경제전쟁은 그 신호탄이다.

북한은 무슨 생각을 할까. 미국과의 평화협정이 최종 목표일까. 그럴 리 있는가. 그것은 과정일 뿐이다. 평화협정을 맺으면 체제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까. 잉크는 지워지는 법이다. 북한의 최종 목표는 남한 흡수통일이다. 통일에 성공한다면? 얻을 것이 많다. 이런 허망한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남한의 모든 경제적 성과를 우리 것으로 만들면 50년 경제 피폐는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핵미사일을 포기할까. 북한의 화해 제스처. 주한미군 철수의 가느다란 희망을 봤기에 나오는 소리 아닐까.

하나하나가 위기를 알리는 적신호다. 난무하는 수사(修辭). 그것은 ‘최후의 카드’를 감춘 뻥카다.

어찌 대응해야 할까. ‘대국민 보고회’를 연 문재인 대통령. 안보위기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지 않았다. 왜 입을 다무는 걸까. 핵잠수함을 만들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 핵미사일이 날아가는 판에 어느 누가 재래식 미사일을 탑재한 핵잠수함을 무서워하겠는가. 공론(空論)이다.

성호 이익은 이런 말을 했다. “작고 약한 자는 크고 강한 자를 당할 수 없다. 화를 면치 못하면 주 태왕(周太王)이 적인(狄人)에게 한 것처럼 멀리 피하면 되지만 옮겨 갈 땅이 없는 자는 멸망을 기다릴 뿐이다.” 한반도는 좁다. 도망갈 곳이 없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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