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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메모] 면피행정 민낯 보여준 ‘살충제 달걀’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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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24 18:31:57 수정 : 2017-08-24 21: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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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살충제 달걀’ 사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자주 들은 말 중 하나는 “여전하다”였다. ‘여전’(如前), 즉 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국민의 먹거리 안전에 손을 뗀, 이게 나라냐”는 분노가 터져나올 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의외로 무덤덤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세월호 참사부터 이후 메르스 사태,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등 대형 사건마다 무능력함을 여실히 보여준 정부 덕(?)에 국민은 어쩌면 웬만한 사태에 무감각해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살충제 달걀 사태는 여러 가축질병 사태의 데자뷔일 수밖에 없다. 보름여 앞선 유럽의 피프로닐 달걀 파동에도 ‘우리는 괜찮다’며 강 건너 불구경만 하던 정부는 막상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자 허둥지둥했다. 살충제 달걀이 발견된 농가의 정보나 난각코드를 잘못 발표해 바로잡는 일이 하루를 거르지 않는가 하면, 날림으로 처리한 전수조사도 오류가 드러나며 두 번 더 재조사를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농식품부 등 관계자들은 “밤을 새워서 그렇다” “사무실서 쪽잠을 잤다”는 등의 말로 양해를 구했다. 컨트롤 타워의 부재와 부처 간, 부처·지자체 간 공조가 안 되는 문제도 낯설지 않다. “농장에서 빠져나간 살충제 달걀이 얼마나 되는지”를 묻자 “유통은 농식품부가 아니라 식약처 소관”이라며 전화를 끊는 공무원, 전수조사서 일부 농약 시료가 빠진 데 대해 “지자체가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책임을 떠넘기는 공무원의 태도도 어쩌면 과거와 대동소이하다.

이런 정부가 사태 일주일 만인 지난 21일 발표한 내용의 핵심은 “살충제 달걀은 안전하며, 2.6개씩 평생 먹어도 된다”가 전부였다. 해결책과 재발 방지책이 아닌 ‘회피’로 마무리하려는 정부의 ‘달걀 안전론’을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이정우 사회2부 기자.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00일이 지나며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세밀한 부분까지 들춰보면 혁신적인 모습은 거의 없어 보인다. 부처의 장들은 교체됐지만 업무를 맡고 있는 공직자들의 관료주의는 여전하다. 그들은 비능률·책임전가·비밀주의라는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 정부의 개혁적이고 획기적인 정책도 공복(公僕)들에게는 단지 업무 과중 문제로 받아들여질지 않을까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구태의연’ 행태를 벗지 못한 정부에 묻고 싶은 국민의 질문은 “달걀 먹어도 괜찮습니까”가 아니다. 아마도 “정부, 이래도 괜찮습니까”일 것이다.

이정우 사회2부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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