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1차 세계대전의 ‘1차 하늘의 싸움’ 1914년 8월30일 독일이 파리를 공습한 것은 새삼 ‘제1차 세계 대전’의 이름값을 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인류는 아득한 원시시대부터 땅과 물에서는 싸웠으나 하늘에서 싸운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그 공습은 역사적 의미가 큰 것처럼 군사적으로 대단한 것은 아니다. 비행기 자체가 생겨난 지 11년밖에 안 된 당시는 군용기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적당한 비행기에 조종사가 폭탄을 들고 비행기에 타고 가서 적군을 보면 손으로 폭탄을 던지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많이 실을 수도 없었다.

1차 대전 초기 군용기는 폭격보다 정찰에 더 요긴하게 쓰인 셈인데 당시에도 무전기는 개발돼 있었으나 무거워서 싣지 못하고 대신 전서구를 이용하는 식이었다. 파리 공습으로부터 약 한 달 뒤인 10월5일부터는 공중전도 벌어졌으나 그것도 기관총이 아닌 소총을 쏘는 식이었다.

대전이 시작되고 1년쯤 지나자 군용기가 기관총을 갖추는 등 본격적인 공중전이 벌어진다. 그러기까지 프랑스가 독일 비행기 8대를 격추했으며 여기서 주로 사용된 총은 칼빈이었다. 칼빈은 한국전에서도 사용됐으나 보병의 기본화기인 M1에 비해도 장난감처럼 보이는 총이었다.

독일은 점차 군용기를 개량시키는 한편 프랑스보다 영국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비행선으로 런던에 수백 t의 폭탄을 투하하기도 했다.

물론 그것도 군사적으로 큰 의미는 없었으나 역사적 의미는 너무 컸다. 영국을 ‘영국답게’ 지켜준 도버해협의 의미가 퇴색한 것이다. 나폴레옹에게 분루를 삼키게 한 도버해협…. 그러나 영국은 도버해협만 믿는 것은 아니었다. 실은 나폴레옹을 막은 것도 도버해협이 아니라 호라시오 넬슨 제독으로 상징되는 영국 해군이었지 않은가.

영국은 발전된 공업 생산력을 증강시켜 항공 산업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대전 막바지에는 하늘에서도 독일군에 우위를 점했다.

양평(언론인)

△1749년 8월28일 독일 시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탄생

△1963년 8월28일 미 흑인지도자 마틴 루서 킹,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연설

△1842년 8월29일 영·청, 1차 아편전쟁 종결하는 난징조약 체결

△1914년 8월30일 독일, 파리에 역사상 첫 공습 실행

△1962년 8월31일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 막사이사이상 수상

△1939년 9월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 발발

△1945년 9월2일 호찌민, ‘베트남 민주 공화국’ 건립해 독립선언

△1783년 9월3일 미국 독립전쟁 종결하는 파리조약 체결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