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계타워] 창조론과 ‘스푸트니크 쇼크’

관련이슈 세계타워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7-08-27 23:04:33 수정 : 2017-08-27 23:04:3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창조과학회 활동한 박성진 교수 / 중소기업부 장관 후보 지명 논란 / 과학계, 창조과학 신앙운동 평가 / 순탄하게 임명될 수 있을지 궁금 한국창조과학회 활동을 해온 포항공대 박성진 교수가 신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돼 논란이다. 1981년 설립된 창조과학회는 국내 공교육기관에서 창조론을 가르치도록 교육을 개혁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 단체이다. 이곳은 성격 자체가 논쟁거리다. 학술활동을 하고 있으나 주류 과학계는 이를 반론 가능한 범주의 과학으로 인정하지 않고 일종의 ‘신앙운동’으로 평가한다. 논란이 불거지자 박 후보자는 창조과학회에서 맡고 있던 이사직을 사퇴했다. 청와대는 “종교 문제가 공직자를 지명하고 임명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조만간 열릴 인사청문회에서 검증될 일이지만 과학계는 이 문제를 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선임에 이은 문재인정부의 과학계에 대한 몰이해 내지 무신경함이 재발한 인선으로 여긴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증거를 미국 그랜드 캐니언에서 찾겠다는 창조과학에 몸담은 이를 공직자로 임명한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비판이다.

박성준 정치부 차장
청와대는 공직자 개인의 종교 문제라지만, 이는 사회적 합리성 결여의 문제라는 게 과학계 시각이다. 더군다나 박 후보자는 2007년 창조과학회 학술대회에서 “이 사회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교육, 연구, 언론, 법률, 기업, 행정, 정치 등 모든 분야에 성경적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며 “오늘날 자연과학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다”는 근대 자연과학의 성과를 부정하는 발언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창조과학을 신봉하는 것은 단지 종교적 선택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 올린 과학적 성취를 부정하는 ‘반과학적인 태도를 지녔다’는 뜻”이라며 “회의주의자이자 과학자로서, 나는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을 매우 위험한 학자들이라 여긴다”고 비판했다.

학교 교실에서 녹색콩, 노란콩 그림을 그려가며 다윈의 유전학과 진화론을 공부한 입장에선 이처럼 신앙의 영역이 아니라 과학 분야에서 진화론을 배척하고 창조과학을 주창하는 일들이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다. 하지만 19세기 다윈의 진화론 등장 이후 시작된 창조론 대 진화론의 대결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심지어 현대 미국에선 한때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게 불법이던 시절도 있었다. ‘진화론 대 창조론’의 격렬한 대립속에 1925년 미국 테네시주는 모든 공립학교에서 “성경의 천지창조론을 부정하고, 인류가 하등한 동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과학 이론을 가르치면 불법”이라는 ‘버틀러법’을 통과시켰다. 그 시절 미국 다른 여러 주 역시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는 조건으로 교과서를 허용했다고 한다. 이에 생물교사 존 스코프스가 버틀러법 위반 혐의로 자신을 고소하는 본보기 소송이 같은 해 벌어졌다.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는가” 등의 법정 공방전이 전국에 라디오로 중계되며 큰 논란을 일으켰다.

테네시에서 버틀러법이 폐지된 건 무려 42년 뒤인 1967년 5월 18일이다. 미국의 거의 한 세대가 진화론 대신 창조론을 교실에서 배우며 자란 것이다. 버틀러법이 폐지되고 미국 전역 교실에 진화론이 퍼질 수 있었던 건 구 소련이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 이후다. 이에 훗날 아폴로 달 탐사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스푸트니크 쇼크’가 미국을 뒤흔들면서 교육 현장에서도 기초 학문을 중시하는 교육 개혁을 진행하면서 비로소 진화론이 다시 교과서에 실릴 수 있었다. 이후 1987년 미국 연방 대법원이 제정 분리 원칙을 들어 공립학교의 창조론 교육 금지판결을 내리며 창조론이 교실에서 퇴출됐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창조론은 ‘창조과학(Creation Science)’과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로 명맥을 이어오다 문재인정부에서 장관을 배출하기에 이른 것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 전 혁신본부장 인선에 대해 “과학기술인들의 열망과 그들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못했다”고 불과 며칠 전 자성한 상태인데 박 교수가 과연 순탄하게 ‘후보자’ 꼬리표를 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박성준 정치부 차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