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살아 있다는 것의 기적

관련이슈 우찬제의 冊읽기 세상읽기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7-08-28 21:17:40 수정 : 2017-08-28 21:17:4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리어왕’ 운명의 비극성 강렬하게 환기
한국 독자에 다양한 문제 의식 던져
‘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이다. 믿었던 두 딸에게 속절없이 배반당한 채 미치광이처럼 광야에서 속절없이 죽어가는 리어를 비롯해, 세 딸의 죽음도 그렇거니와 글로스터 백작 일가의 이야기도 비극의 심연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하다. 부정적 인물은 물론 긍정적 인물도 죽음에 이르게 되는 ‘리어왕’은 운명의 비극성을 강렬하게 환기한다. 운명적 비극의 기반에는 우선 알지 못한다는 것의 비애가 손꼽힌다. 대부분이 운명은커녕 진실이나 사실을 분별하지 못하는 가운데 비극에 빠지기 때문이다.

리어는 진실하고 정직한 충신 켄트 백작을 추방한다. 그의 말에서 진실을 판별하지 못한 리어는 추방 후에도 리어를 걱정해 변장한 채 시중을 드는 켄트의 존재를 분별하지 못한다. “사실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지위와 재산을 버려도 괜찮다”며, 큰아들 에드거의 음모를 밝히려 했던 글로스터는 음모의 주역이 에드먼드임을 알지 못한다. 서자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에드먼드가 형을 제거하기 위해 꾸민 타락한 위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남을 알기도 어렵지만 나를 알기도 어려우니, 알지 못함의 비극은 심화된다. 배반과 광기의 폭풍 속에서 자기를 상실한 리어가 절규하지 않았던가.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세계와 자기의 진상을 헤아리지 못한 상태에서 죽음의 광풍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셰익스피어는 살아 있다는 것의 기적을 역설한다. 리어를 돕다가 왕의 둘째 사위 콘월에게 눈이 뽑히는 고통을 당하고, 에드먼드의 실상마저 알게 된 글로스터의 절망은 극에 달한다. 그는 “길이 없으니 눈이 없어도 돼”라며, 가난한 농부로 위장한 채 자기를 돌보는 아들 에드거에게 도버해협 벼랑 위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아버지에게 추방돼 고생하면서도 진실한 삶에의 희망을 잃지 않던 에드거는 꾀를 내어 아버지를 자살에서 구한다. 자살마저 실패한 자신을 슬퍼하는 아버지에게 그는 말한다.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리어나 글로스터가 알지 못했던 게 많지만, 그 으뜸은 살아 있다는 것의 기적 아니었을까. 많은 전쟁 서사나 암병동 이야기들에서,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간절히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시간이다. 그렇다면 글로스터처럼 어제 죽을 뻔했던 이에게 오늘은 기적의 시간에 값한다.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1위국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 노년층 자살률이 적지 않은 나라의 독자에게 ‘리어왕’이 전하는 메시지는 복합적이다. 안다는 것과 관련된 인식론의 화제, 삶의 기적성과 관련한 생철학적 화두 및 자살과 노년층 삶의 질과 관련한 복지정책의 문제 등 여러 국면에서 다채로운 문제의식을 던지기 때문이다.

태풍의 계절을 넘기면서 특히 살아 있다는 것의 기적에 대해 더 숙고하게 된다. 구차함, 치욕스러움, 희망 없음, 불안함, 권태로움, 부질없음, 배반감과 복수감 따위의 느낌과 넉넉함, 명예로움, 희망적임, 편안함, 생동감, 의미 탐문, 은혜와 감사 같은 느낌 사이에서, 살아 있다는 것의 기적을 추구하고 향유하는 감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