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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주름에 당당한 사회는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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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04 23:31:39 수정 : 2017-09-04 23: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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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타지에서 아픈 것이 첫째로 서럽다면 이동수단이 불편해 숙소에만 틀어박혀야 하는 일은 둘째가 아닐까. 최근 출장차 방문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의 내 처지가 꼭 그랬다. 운전면허가 없어 이동 범위가 한정돼 취재에 어려움이 컸다. 도보로 이동하는 객기를 부려봤지만 38도를 웃도는 건조한 날씨에 조금만 돌아다녀도 살갗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자가용을 손수 몰아 준 통역원의 따뜻한 배려가 없었다면 숙소 밖을 벗어나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 때문에 출장 초반에는 숙소 안에 머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덩그러니 놓인 퀸 사이즈 침대 위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일과다. 그런데 넋 놓고 브라운관을 쳐다보고 있자니 각종 CF 모델과 프로그램 출연자의 나이가 중장년층이라는 데 새삼 놀랐다. 한국에서 시트콤 ‘프렌즈’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제니퍼 애니스턴(48)은 화장품 광고에서 주름살을 여실히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심야시간에 앞다투어 방영된 버라이어티 예능 출연진 역시 50~60대로 나이대가 높았다. 한국에선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 브라운관의 ‘주역’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제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부터 은연중 느꼈던 이질감의 원인을 알 것 같았다. 내가 출장 전 비행기를 탄 경험은 제주도와 일본 여행인데 20대 미모의 승무원이 뇌리에 남아있다. 하지만 처음 타본 미국 항공사의 비행기에서는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푸근한 외모의 스튜어디스가 나를 반겼다. 승객을 응대하는 데 젊고 아름다운 미모는 그리 중요치 않다는 뜻이다.

안병수 체육부 기자
솔트레이크시티 시내에서 엿본 광경도 비슷한 인상을 줬다. 2017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성인 비만율 1위(38.2%)인 미국답게 거리는 ‘배불뚝이’들이 점령했다. 그들은 비만율이 두 번째로 낮은 한국(5.3%)에선 따가운 눈총세례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런 걱정을 하는 이는 나뿐이었다. 누구보다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밝은 웃음으로 담소를 나누는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도 돌아보게 만들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젊음과 정형화된 미(美)를 강요하는 세태에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무심코 텔레비전을 보면 일부 유명 스타가 광고를 독식하는 현상을 본다. 해당 제품의 효용성이나 구매층을 고려하기보다는 싱그러운 청춘을 강조해 사람들을 홀린다. 잡티 하나 없이 팽팽한 피부를 자랑하는 여배우가 주름살 개선 제품을 권유하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걸쳐도 ‘화보’가 되는 모델들이 의류 광고를 점령했다. 프로그램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담보하는 패널 역시 ‘청춘 스타’다.

어차피 소진되는 젊음과 이른바 ‘축복 받은 몸매’에 한국 사회는 언제까지 목을 매야 할까. 소수에게 허락된 젊음과 한없이 높은 미의 기준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 다수를 비정상으로 만든다. 그보다는 누구나 겪는 노화와 평범한 외모, 그리고 자신이 가진 본연의 몸매를 떳떳이 내보일 수 있는 사회가 훨씬 공정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봄·여름 ‘청춘 일색’의 브라운관이 계절이 바뀌듯 중후한 단풍 빛깔로도 물들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안병수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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