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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판사들이여, 용기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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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08 17:33:11 수정 : 2017-09-08 17: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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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삼승 화우 고문변호사
“국민이 사법개혁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는 줄 아는가. 그건 사법부가 권력을 남용해 왔다는 게 아니라 ‘사법부, 너희들은 너무 약했어, 권력자들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어, 이젠 그러지 말고 네 소신대로 법대로 판결해!’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연구부장 등 25년간 법관으로 봉직했던 양삼승(70)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는 8일 ‘앞으로 사법개혁 논의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현재 사법개혁이 논의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되물은 뒤 이같이 진단했다.

“권력이 검찰 등을 이용해 민주화 운동가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유죄를 내려라, 10년형으로 해라’고 압박하면 판사들이 용기를 갖고 판단해야 하는데 ‘무죄 판결하면 (권력에) 얻어맞을 것 같은데, 10년 해달라고 하니까 5년만 내리지’라고 겁먹고 살아온 것 아니냐. 권력과 검찰에 너무 짓눌려왔던 거다.”

지난 5월 권력과 사법부간 관계를 파헤친 책 ‘권력, 정의, 판사’(까치)를 펴낸 양 변호사를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에 위치한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책은 권력 및 검찰에 의해 일그러진 사법부의 민낯과 대표 판결을 살펴본 뒤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1972년 사법시험(제14회)에 수석 합격한 그는 1974년 임관한 이래 25년간 법관으로 봉직하며 헌법재판소 연구부장과 윤관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고 1999년 퇴직한 뒤에는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2009년엔 대한변협 부협회장을 맡기도 했다.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는 8일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에 자리한 사무실에서 사법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검찰이 사법부에 한 과거사를 조사해 백서로 꼭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판사들, 도사인 척말고 사법개혁에 용기 내라”

그는 단아한 체구에 흰머리가 적지 않았지만 미리 준비한 메모를 보며 자신의 의견이나 경험을 열정적으로 얘기했다. 이날 인터뷰는 책 자체가 사법개혁 내용을 담고 있어 자연스럽게 사법 및 검찰개혁, 대법원장 후보인 ‘김명수호’의 향방 등 법조계 현안과 자신의 40여년 법조 인생에 집중됐다.

양 변호사는 “통치권자, 즉 대통령이 사법부를 짓누를 때 그가 직접 대법원장이나 법관에게 하는 게 아니라 중간에 검찰을 끼워넣어 한다”고 권력의 사법 침해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그는 권력이 검찰을 애용하는 건 합법성을 어필하면서도 원하는 정책 집행이 수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상대방’이 극단적으로, 비정상적으로 권력을 동원해 목표를 달성하려 애쓰는 상황에서 판사들이 가져할 덕목은 용기라고 강조한다. “판사들이 비겁함을 감추기 위해 이용하는 핑계수단이 뭐냐 하면 ‘나서서 투쟁하면 판사가 점잖치 못하다’고 둘러대는 것이다. 도사인 척하는 거다.”

사법부 및 법관 독립이나 법관 용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은 그가 겪은 네 번의 씁쓸하고도 서늘한 인생 경험에서 비롯한다. 전형적인 법조인 프로필로 보이는 ‘1972년 사법시험 합격→1974년 판사 임관→25년간 봉직하다 1999년 퇴직’이라는 그의 삶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씁쓸하고 서글프며 놀랍고 아픈…그를 바꾼 4번의 경험

양 변호사는 역시 법관으로 24년간 봉직하다 1973년 옷을 벗은 아버지 양회경 대법관의 모습을 보며 권력의 야수성을 처음 목도했다. 즉 양 대법관과 동료 대법관들은 1971년 6월 박정희정권의 의지에 반해 군인의 기본권을 제한한 국가배상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가 미운털이 박힌 것이다. 정권은 1972년 10월 유신헌법 공포 이후 위헌결정을 한 대법관 9명을 재임용에서 모두 탈락시켰다.

서울형사지방법원 부장판사로 근무하던 1992년. 그는 검사가 피고인에게 10년형 이상을 구형하면 구속영장의 효력을 유지토록 한 형사소송법(제331조 단서조항)에 대한 위헌심판을 제청하며 두 번째 경험을 하게 된다. 검사의 구형이 판사의 판결이 제한하는 건 문제라는 판단에서다. 헌법재판소는 그의 위헌제청을 받아들여 위헌을 선언했고 해당 규정은 폐기됐다. 하지만 그는 이 사건으로 검찰로부터 미운털이 박혔고 나중에 불명예스러운 퇴임으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세 번째 충격은 미국 법조 사찰연수 중이던 1995년 5월 미국 워싱턴DC의 연방대법원에서 대법관 앤터닌 스캘리아(Antonin Scalia)와의 만남. 양 변호사는 이 면담에서 통치권자나 행정부, 검찰, 여론 등의 여러 압력에 굴하지 않고 독립해 용기를 가지고 판결해왔고 또 하겠다며 이를 ‘사법 적극주의’로 표현했다. 하지만 대화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다. 스캘리아는 그의 얘기를 한참 듣고 있다가 “당신이 말한 내용은 판사로서 당연해 해야 할 것”이라며 “구태여 강조해 얘기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때 “판사로서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인 걸 새삼스레 대단한 용기와 정의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며 용기와 통찰을 화두로 삼게 됐다고 회고했다.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맡고 있던 1999년 2월1일. 그는 국내 유수의 언론에 그의 이름이 거명되며 네 번째 아픈 경험을 한다. 즉 동문 법조인들끼리 월 1회 회식을 했는데, 모임 대표로서 후배 변호사로부터 식대비조로 100만원을 받아 20만원을 쓰고 나머지 80만원을 후일의 모임 비용을 위해 통장에 입금한 게 화근이었다. 후배 변호사가 수임비리에 구속되면서 이 사실이 보도돼 불명예 퇴직해야 했다. 그는 “나중에 해당 언론사 기자가 검찰이 자료를 줬다고 고백하더라”고 전했다. 그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불의의 타격”이었다.

양 변호사는 1999년 법복을 벗은 뒤 법무법인 화백에 입사해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고, 2009년엔 대한변협 부협회장을 역임했다. 법관 출신인 그는 법정에 출입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법관 시절 맺어온 동료 및 선후배 법관과의 관계를 변호사 일처리에 이용해선 안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사법개혁 핵심은 “공정한 재판 위한 사법 및 법관 독립”

그는 법조인으로 헌법 및 법률 해석 등과 관련해 3가지 성향이 있었다고 되돌아봤다. 즉 법률의 형식적 문언 해석보다 입법 취지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고, 국익과 사익이 충돌할 경우 전시 등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개인 권리보호에 더 비중을 뒀으며, 검찰 등의 형사사법 권력의 권력남용에 대해선 강하게 우려했다는 거다.

양 변호사는 최근 법조계 내에서 일고 있는 사법개혁 논의와 관련해 “눈에 확연히 보이지는 않지만, ‘대법원장이 권력과 보조를 맞춰왔구나’라는 걸 판사들이 감지하고 반발하는 것”이라며 큰 틀에서 보면 1971년 1차, 88년 2차, 93년 3차 사법파동 때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면서 작금의 사법개혁의 핵심은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해 사법부 판사들이 정의롭게 재판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행정처 개혁 등도 이를 위한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 개혁 동의…“김명수호는 검찰의 과거사 백서 내야”

양 변호사는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른바 공수처) 설치 등 강도 높은 검찰 개혁을 촉구했다. 그는 “수사권을 조정하면 경찰의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며 수사권 조정을 반대한다는 건 개혁의 큰 틀을 벗어난 것”이라며 “일부 부작용이 있더라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개혁의 큰 틀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문재인정부가 추진 중인 검찰개혁을 사법개혁과 따로 추진하면 안된다며 검찰이 사법부에 나쁜 일이나 영향력 행사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검찰청 건물을 법원 건물과 떨어뜨리기 △검사의 대법관 임명 관행 중단 △검찰의 사법부에 대한 과거사 정리 3가지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뜻도 강하고, 노무현정권에 이어 2번째이기에 경험이 축적된 측면도 있고, 특히 국민이 강하게 열망하고 있어 성공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양 변호사는 최근 입법부의 권력이 강화하고 비대해진 모습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행정부, 대통령이 검찰권력을 이용해 사법부를 압박하며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일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국회가 권한이 너무 커져 입법권이 너무 커지면서 남용 수준으로 하고 있다”며 대표적인 예로 사법평의회 내용을 담은 개헌안을 거론했다. 즉 “국회에서 개헌안을 만들면서 사법평의회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사법부가 약한 상황에서 국회가 사법부를 견제하고 압박하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반대를 분명히 했다.

그는 김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선 “대법원장이 되면 큰 틀의 개혁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지금처럼 처신해온 것과 달리 반대쪽 입장도 고려,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사법부에 한 나쁜 일을 조사해 백서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양삼승 변호사 프로필

-1947년 서울에서 출생
-1970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72년 사법시험 제14회 수석 합격
-1973년 아버지 양회경 대법관 퇴임
-1974년 서울 민사지법 판사 임관
-1977∼78년 독일 괴팅겐 대학 연수
-1980년 국보위, 입법회의 각각 4개월씩 파견 근무
-1987년 서울대 법학박사(민사법)
-1990년 헌법재판소 연구부장
-1995년 미국 3개월 단기 연수, 연방대법관 스캘리아 만남
-1998년 윤관 대법원장 비서실장
-1999년 퇴직, “불의의 타격”
-1999년 법무법인 화백 변호사
-2003년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2009년 대한변협 부협회장
-<법과 정의를 향한 여정>(2012) <‘권력, 정의, 판사’>(2017) 등 저술

사진=하상윤 기자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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