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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꼬부랑 사라진 동화 속 젊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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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08 23:53:55 수정 : 2017-09-08 23: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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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작대기를 짚고 꼬부랑 고개를….”

어릴 적 동요나 동화로 만났던 ‘꼬부랑 할머니’. 동요는 고인이 된 작곡가 한근태씨가 지었지만, 꼬부랑 할머니를 주제로 한 설화는 지역마다 다양하게 전해진다. 이야기는 ‘꼬부랑’이라는 어휘를 첫말에 이어가며 재미있는 사건들을 보태는 것이 전부지만, ‘꼬부랑’에 리듬감을 주면 이야기의 재미가 더해진다.

하지만 꼬부랑 할머니의 진짜 모습을 떠올린다면 마냥 흥겨울 수만은 없는 듯하다. 꼬부랑 할머니의 잔뜩 굽어진 허리는 엄연한 병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희끗한 머리에 이마가 잔뜩 주름진 꼬부랑 할머니의 모습은 어린 시절 생각하던 전형적인 할머니의 모습이기도 했다. 

권구성 문화부 기자
요즘 일 때문에 동화책을 펴는 일이 많아졌다. 올해 초부터 동화책을 소개하는 지면을 맡으면서다. 매주 십여 권의 동화책을 보고, 그중 일부를 기사로 쓰고 있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동화책에는 어릴 적 봤던 꼬부랑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꼬부랑 할머니의 빈자리는 ‘젊은 할머니’가 대신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꼬부랑 할머니와 같은 흰머리나 주름이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허리 역시 굽어있지 않다. 다만 달라지지 않은 점이 있다면, 이들이 대개 ‘할머니’로만 불린다는 점이다.

이것은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는 나이가 늘어났지만, 일정 나이만 되면 어김없이 ‘노인’이 되어버리고 만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 기준은 만 65세다. 1964년 국내에 도입된 이 기준은 유엔이 정한 국제 기준이다. 하지만 그 유래는 1889년 독일 비스마르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인의 평균수명은 49세였다. 반면 오늘날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80세를 웃돌고 있다.

신체 노화가 늦어지는데도, 정부 기준의 ‘고령화’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8월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고령사회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인구의 14%가 넘는 725만여 명이 노인인구라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예상보다 1년 빠른 속도다.

고령사회에 대한 위기의식의 기저에는 ‘일할 수 없는 노인이 늘어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일할 수 없는 것은 체력이나 업무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고령사회에 먼저 진입한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노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가고 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1994∼2014년까지 20년간 16세 이상의 노동참여율은 19% 늘어난 반면, 65∼69세와 75세 이상의 노동참여율은 각각 122%, 117% 증가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노인 기준 상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는 노인 기준 조정에 소극적이다. 노인 기준 조정이 자칫 세대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국내 노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70세는 넘어야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78%에 달했다.

지금 동화책을 보는 어린 세대의 눈에 노인은 여전히 젊고 건강하다. 그들의 역할을 단지 ‘할머니’나 ‘할아버지’로만 제한하는 것은 낡은 제도와 편견이 아닐까. 아이들의 눈은 정확하다.

권구성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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