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제가 생겼지만 당사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흔히 ‘고착상태’라고 표현한다. 한쪽에서 먼저 변화를 시도하면 무조건 손해 보는 상황이 연출되므로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 그래서 지금이 일종의 평형상태가 된 것을 말한다. 이런 상태를 수학에서는 ‘내시평형’이라고 하는데, 게임이론의 주요 개념이다. 경제현상의 분석에 많이 쓰이는 게임이론은 경제학의 한 분야로도 간주되지만, 기본적으론 바둑이나 체스와 같은 게임의 승리전략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이론이다.
폰 노이만이나 영화 ‘뷰티플 마인드’로 잘 알려진 존 내시 같은 수학자들이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고, 내시는 이 업적으로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았다. 특이하게도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요 멤버였으며, 최초의 수소폭탄 개발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폰 노이만과 게임이론의 대가인 폰 노이만은 동일인이다. 게임이론뿐 아니라 수학의 거의 전 분야에 달통해서 ‘보편가’라고 불리는 노이만은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경험한 탓에 전쟁 억지를 위한 무기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수학 |
우라늄처럼 무거운 원자핵이 가벼운 원자핵으로 갈라지면서 질량 결손이 생기고, 이 사라진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돼 쏟아지는 게 핵분열이다.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그래서 인간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으로 비유된다. 핵분열 과정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이 인체에 위해하기에 핵분열을 사용하는 원자력발전의 안전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연료라고 불리는 가벼운 수소 동위원소들을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에 두면 합쳐져서 무거운 원자핵이 되는 게 핵융합인데, 이 과정에서도 질량 결손이 생겨서 에너지로 변환된다.
플라스마 상태가 너무 고온 고압이라서 이를 안정적으로 담아둘 용기가 없기에 아직 핵융합 발전은 실현되지 못했다. 방사능 방출이 없는 핵융합 발전은 꿈의 에너지원이 될 수 있어서 관련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액체 이중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열핵무기는 폭발력은 크지만 너무 무거워 발사체에 탑재하는 게 불가능하다. 고체 연료를 사용해 무게를 줄이면 탄두로 탑재가 가능해지는데, 폭발력의 크고 작고보다는 경량화가 더 중요하고 어려운 기술로 알려져 있다. 핵분열을 일으켜 초고온 고압상태를 만들어서 핵융합을 유도하는 게 열핵무기, 즉 수소폭탄인데 북한이 경량화까지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금의 핵위기 상황은 어렵게 유지되던 한반도 평형상태에 변화를 초래하는 수준으로 보인다. 통상의 게임이론 관점으로는 먼저 움직인 측이 손해를 보게 되지만, 수천 ㎞를 날아가는 미사일과 열핵무기 기술 같은 전략자산의 보유는 기존 내시평형의 조건을 넘어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운 평형점에 다다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양측 모두의 핵 자산 보유나 일시 핵 자산 보유 후에 협상을 통한 동시 폐기 같은 방안이 가능성으로 거론된다.
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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