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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디지털 사진의 경계를 허물다

입력 : 2017-09-19 20:54:48 수정 : 2017-09-19 20: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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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원로 사진작가 강운구 / “조리개나 셔터 조절하는것조차도 / 이제는 조작이라는 느낌이 들어 / 디지털 사진이 경박?… 장점 더많아” / ‘빛이 그려낸 그림’ 그림자에 관심 / 작품에 자신의 그림자 적극 담기도 경주 남산 등 ‘오래된 풍경’ 작업으로 유명한 강운구(75) 작가가 폰카(휴대폰 카메라)에 빠졌다. 이제는 그의 사진 60~70%가 스마트폰으로 찍을 정도다.

“이젠 나와 대상 사이에는 기계도 기술도,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주워 담아야만 할 어떤 이삭과 조우했을 때, 그냥 그것에 맡기면 된다. 이젠 조리개나 셔터를 조절하는 것조차 조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경배할 때 맨손을 모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는 두 손 사이에 디지털이 있다. 이제야 깨달았다. 모든 사진은 오마주이며 경배이다.”

긴 호흡으로 깊이에 치중하는 강운구 작가. 그는 “대상에 개입하지 않고 장면(Scene)이 자동으로 무르익도록 기다리다가 때가 왔을 때 셔터를 누른다”고 말했다.
그의 새로운 기기에 대한 도전은 연령을 감안한다면 신선하게 다가온다. 창작에 대한 호기심은 영원한 청춘이란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실 세상은 바뀌었는데, 내 마음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좋아했던 대상은 거의 다 사라졌거나 많이 변했다. 나는 그저, 힘이 들거나 말거나, 한계가 있거나 말거나 하던 대로 막장 같은 암실작업을 했다. 디지털 기술을 넘보기보다는 내게 익숙한 방법대로 일을 했다. 후배들이나 동료들은 내가 아날로그 사진술의 순교자가 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듯했다. 그러나 폰카로 기념사진을 몇 번 찍으면서, 문득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폰카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았다.”

그는 폰카의 한계를 잘 알고, 그 범위에서 작업을 하면 결과는 나쁘지 않다고 했다.

“디지털 사진이 경박해 보이는 것은 사람들이(작가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막장’에서 몇 십 년 동안 단련된 눈으로 디지털 기술을 통제하고 조절해서 마침내 내 눈에 맞는 톤의 사진이 나올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그는 아직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조작할 손은 없다. 그래서 ‘빌린 손’ 곁에 앉아서 색의 톤을 주문한다. 폰카와 더불어 요즘엔 그림자에 집중하고 있다.

“빛이 그린 그림이 그림자다. 그것을 거둬 담는 것이 사진이다. 덧없이 사라지는 그림자를 네모난 틀(프레임)에 담으려고 나는 내 그림자를 끌며 틀(기계)을 들거나 메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어떤 그림자가 느낌을 주거나 말을 할 때 그것을 알아채고 주저없이 틀에 가두는 게 사진가가 하는 일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 중절모 쓴 남자 형태의 거울에 비춘 자신의 모습을 찍는 작품.
그는 일상의 풍경 속 네모난 프레임을 찾아 그 안에 작가 자신의 그림자가 비추는 화면들을 포착한다. 그가 폰카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그림자로 아른거리며 등장하기도 하고, 폰카를 들고 위에서 바닥을 내려찍은 이른바 ‘셀피’ 스타일 사진에는 그의 신발이 빼꼼 보이기도 한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순광(純光)의 풍경 사진을 찍다 보면 사진가의 그림자가 땅바닥에 길게 깔리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작가는 프레임 안에 자신의 그림자를 담지 않으려 뒤로 물러선다. 그러나 강 작가는 그림자를 작품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제야 무엇에도 걸릴 것이 없는 모습이다.

“지금껏 나는 나에게 엄격했다. 이윽고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마침내 나는 나를 믿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조금은 나에게 너그러워졌다. 그러자 장대하게 펼쳐진 지평선이 문득문득 어른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은 어슴푸레한 푸른빛에 사위어갔다. 올라온 것도 없는데 내려간다. 바위 같던 나의 확신은 설핏한 햇살이 비춘 그림자처럼 아련해진다. ‘이런들 어떠리오. 저런들 어떠리오’로 되는 것이 잘 늙는 걸까? 누구나 다 그래야만 될까? 그 ‘이런들…저런들’에는 허무의 냄새가 자욱하다. 나는 그런 늪을 멀리 돌아서, 정신 가다듬고 다시 신발 끈 조여 매고 싶다. 내려가면 올라가는 길도 있을 터이다.”

그는 내려가면서도 여전히 주워 담겠다고 했다. 그게 ‘노년의 과오’가 될지라도. 몇 해 전부터는 이 땅의 사진가로서 의무 복무가 끝났다며 해외를 유랑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니 사진이 더 재미있어졌다고 한다.

외국 사진 이론 잣대를 걷어내고 우리의 시각언어로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적 사진을 개척한 사진가로 평가받고 있는 강운구는 스스로를 ‘내수(內需) 전용 사진가’라고 말한다. 그가 천착하는 내용도 그렇지만, 여기에는 ‘국제적’, ‘세계적’이란 명분으로 정체성 없는 사진들이 범람하는 현상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담겨 있을 터이다. 그는 11월25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초대전를 연다. 전시에 맞춰 사진 146점이 수록된 사진집도 발간됐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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