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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삼성에 회초리만 들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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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20 23:20:18 수정 : 2017-09-20 23: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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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부에서 빚어진 정경유착 / 근절한다며 제재만 가하다가 / 현대·대우의 전철 밟을 수 있어 / 경영 본업에 충실토록 배려해야 1983년 부천의 삼성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던 전두환 대통령이 애로사항을 물었다. 김광호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반도체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설비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일본에서 수입하는 프로젝션 얼라이너(회로 패턴이 담긴 마스크에 빛을 통과시켜 웨이퍼에 회로를 그려 넣는 장비)의 관세가 50%나 돼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대일 무역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높은 관세가 붙어 있었다. 이 때문에 반도체 사업은 일본을 추격하기가 어려웠다. 전 대통령은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없애주겠소”라고 했다. 1개월 뒤 관세 장벽이 사라졌다.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에 또 한번 묻자 김 전 부회장은 외화대부 조건을 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정부가 외화 대출을 묶어놓은 것은 대일 무역적자 때문이었다. 사공일 재무부 장관이 반대했다. 전 대통령은 “내가 두어달 뒤 퇴임한다고 우물쭈물하면서 미루다가는 가만두지 않겠어. 무조건 1주일 안에 해줘”라고 지시했다. 덕분에 삼성전자 현대전자(하이닉스) 금성사(LG전자)가 수월하게 반도체 장비를 수입해 생산규모를 늘릴 수 있었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1988년 처음 흑자를 냈다. 14년간 적자를 모두 커버하고도 남았다.

1974년 창립한 삼성반도체(한국반도체 인수)는 그동안 매년 적자에 허덕였다. 군사 정권은 한때 반도체를 민간기업에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 국영화 프로젝트를 추진한 적도 있었다.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에 전자산업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전담팀을 만들어 운영할 정도로 관심을 기울였다. 핵심기술과 중역의 이직조차 청와대가 통제했다. 전 대통령은 삼성전자에서 유출된 인력을 원상태로 되돌려 보내는 데도 개입했다. 국가기간산업으로 간주해 지원하고 밀어붙인 게 오늘날 국부를 창출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한용걸 논설위원
삼성전자의 출발에도 권력의 입김이 작용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7년 말 김종필을 불러 “이병철 회장한테 이제 중화학공업을 좀 해보라고 해. 임자가 가서 좀 물어봐”라고 했다. 이 회장이 “중화학공업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십니까”라고 묻자 박 대통령은 “조선이나 자동차, 전자공업 중 하나를 해보시오”라고 했다. 이 회장은 전자공업을 선택했다. 이렇게 해서 삼성전자의 초석이 놓이고 삼성반도체를 합병하면서 규모를 키웠다.

삼성전자는 애초부터 ‘다른 의미에서’ 정경유착의 산물이다. 이 회장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삼성이 나 개인의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삼성은 사회적 존재이다. 그 성쇠는 국가 사회의 성쇠와 직결된다”고 호암자전에 기록해 놓았다. 삼성의 운명이 한국사회의 명암과 결을 함께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휘둘리다가 증발하는 기업군을 보면 삼성의 운명도 이젠 예측불허이다. 대우그룹은 김영삼정부의 기치에 발맞춰 세계화 깃발을 올렸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현대그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독려로 대북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존망의 기로에 섰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삼성전자의 ‘사실상’ 총수가 청와대에 불려가 승마 타령을 들을 때부터 조짐이 이상했다. 기업의 핵심 보좌 인력들이 해외 승마 훈련장을 물색하고, 이런 문제들이 부회장의 머릿속을 채우면서 기업 운영이 본질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배터리가 왜 폭발했고, 실리콘밸리에서 인공지능 개발이 어디만치 갔는지 관심을 가질 여력이 그만큼 줄어들었다. 삼성전자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순위에서 지난해 세계 20위였다가 올해 89위로 추락한 것을 보라.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기업을 상대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대명제 때문이다. 실상은 특정정파와 얽힌 커넥션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내것, 네것” 따지다가 초가삼간 불태우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삼성은 국가의 안위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회사가 됐다. 삼성이 진화하도록 끌어올리지 않고 회초리만 들이대면 그 여파에 국가 경제가 어찌될지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이 정부가 할 일은 기업이 경영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에 더 이상 목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한용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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