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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의창] 가을밤, 창덕궁 달빛기행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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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21 21:08:25 수정 : 2017-09-21 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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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 역사의 무대 / 가장 한국적인… 그래서 더 아름다워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완연히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이 계절에 꼭 추천하고 싶은 장소가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가 알려진 궁궐 창덕궁이다. 창덕궁은 1405년 한양으로 재천도한 태종에 의해 건설됐다.

이미 세워진 법궁(法宮)인 경복궁의 기능을 보완하려는 목적과 함께, 경복궁은 1398년 왕자의 난이 일어난 장소여서 태종에게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웠던 점도 큰 작용을 했다. ‘태종실록’에서 태종이 “내가 어찌 경복궁을 허기(虛器)로 만들어서 쓰지 않는 것이냐? (…) 술자(術者)가 말하기를, ‘경복궁은 음양의 형세에 합하지 않는다’ 하니, 내가 듣고 의심이 없을 수 없으며, 또 무인년 규문(閨門)의 일은 내가 경들과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일이다. 어찌 차마 이곳에 거처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에서 무인년 규문의 일은 바로 태종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동생 방석을 희생시킨 사건을 말한다.

창덕궁은 동서축의 공간이 넓고 후원 영역이 발달해 왕이 거처하기에 편안했기 때문에 조선의 왕들이 가장 많이 생활한 공간이었다. 임진왜란 때 폐허가 돼 1868년 중건 사업을 완료한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은 임진왜란 후 바로 복구 작업에 착수해 조선후기에는 법궁의 기능을 하면서 실제적으로 조선을 대표하는 궁궐이 되었다. 조선의 왕들이 가장 많이 활동을 했고,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지켜 본 궁궐이었다. 정전인 인정전은 국보로, 편전인 선정전과 희정당은 각각 보물로 지정돼 있다. 창덕궁 인정문에서는 연산군을 비롯해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등 8명의 왕이 즉위식을 올렸으며, 연산군과 광해군은 반정으로 창덕궁에서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왕의 침전인 대조전에서는 인조와 효종이 승하하고, 효명세자가 태어났다. 인정전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왕비로 맞이한 곳이기도 하다.

창덕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은 후원 영역이다.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한 건축과 조경의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 한국 전통건축 및 조경의 정수로도 손꼽힌다. 정조가 세운 규장각과 주합루를 비롯하여 존덕정, 관람정, 취규정, 소요정, 태극정 등 아름다운 정자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순조대에 효명세자가 아버지를 위해 지은 연경당은 궁궐 안에 사대부 집의 형태를 띤 건물로 단청을 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왕이 직접 농사를 짓고,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것이 이색적인 청의정도 주목된다. 넓은 바위와 폭포로 절경을 이루는 소요암과 옥류천 일대에서는 인조가 직접 쓴 ‘玉流川’ 글씨와 절벽 바위에 새겨져 있는 숙종의 시를 찾을 수 있다.

요즘에는 창덕궁의 야간 탐방도 허용된다. 창덕궁에서는 살아 숨을 쉬는 궁궐 만들기 일환으로 ‘달빛 기행’ 행사를 마련하여, 밤 8시에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으로 들어가서 인정전 등을 거쳐, 낙선재 후원을 돌아 나오는 체험 행사를 하고 있다. 밤낮으로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길 수 있는 창덕궁에서 올가을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접하는 추억을 만들어 보았으면 한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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