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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묵혀 두었던 사진을 꺼냈다. 어느새 1만110장의 사진들이 쌓이고 있는 휴대전화 사진앨범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풍경이다. 서울 시내 어느 식당 앞에 붙어 있던 문구다. ‘나가라 일터로… 나에겐 빚이 있다!!’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 가본 곳, 맛난 점심을 먹고 난 뒤 식당을 나서는데 빚이란 단어가 눈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갈 땐 못 봤는데 나올 때 보이다니 하며 몇 장을 툭툭 휴대전화에 담았다. 난 지금 일터에 나와 있다. 일을 하고 있다. 일터니까 일을 하는 게 당연하지만 빚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 1인당 빚이 3000만원까진 아니더라도 그쯤에 육박한다. 내 빚도 만만찮다. 일을 하다 보니 빚이 생긴 건지 빚이 생겨 일을 해야만 하는 건지 많이 헷갈린다. 누군가는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는 여름휴가도 잘 갔다 왔고 다시 일터지만 곧 내 인생 최장의 추석 연휴가 다가온다. 그러곤 또 일해야 한다. 빚도 갚아야 한다. 일하는 인간,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에겐 빚이 있다. 

허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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