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밤에도 후텁지근하던 여름이 지나고 이제 한낮에도 시원한 바람이 분다. 완연한 가을이 온 것이다. 그리고 이는 2~3개월 가까이 이어오던 ‘벌레와의 전쟁’이 최종적으로 종료됐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자가 살고 있는 집은 바로 산 옆에 자리하고 있다. 산이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문을 열면 바로 울창한 숲이 보이는 곳이다. 이사를 하겠다며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는 이처럼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서울 도심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푸른 숲을 매일 창문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름에도 창문만 열어놓으면 숲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웬걸. 이 집은 여름에 창문을 열 수 없다. 산에서 바로 내려오는 수많은 ‘벌레’들 때문이다. 파리나 모기 같은 그런 벌레들이 아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벌레들이 툭하면 방충망 틈으로 침입해 들어온다. 심지어 잠시 방심해 방충망이라도 열렸다 싶으면 엄지손가락만 한 날벌레가 출몰하기도 한다. 아내는 벌레라면 질색하는 평범한 여자다. 어느 순간 우리 집 창문은 여름에는 개방 금지가 됐다.

이처럼 벌레와의 전쟁을 벌이던 두 번째 여름의 어느 날 인터넷에서 기묘한 동영상을 봤다. 서울 도봉산 밑 지역을 벌레 떼가 습격했다는 내용이다. 클릭해보니 한 TV 리포트 프로그램 하이라이트 영상이었는데 지구온난화로 참나무 생장이 늘어나면서 이 나무에서 서식하는 하늘소 개체가 늘어나 도심까지 내려왔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화면 속에 보이는 벌레의 외관이 눈에 익숙하다. 우리 집 창문에도 제법 많이 출몰하는 놈이기 때문이다. 창문 방충망에 바짝 붙어있다가 방심한 틈을 타 집에 침입했던 벌레가 바로 이 하늘소였다.
서필웅 체육부 기자

이 영상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의외로 이름이 예쁘구나’였다. 좀 더 찾아본 하늘소의 이야기는 의외였다. 주로 병든 참나무나 소나무에 서식하는 곤충이라 해충으로 오해받곤 하지만, 오히려 병든 나무를 솎아내고 빨리 분해시켜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역할도 하는 곤충이란다. 당당한 숲 속의 일원으로 오랫동안 살아온 셈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산에서 내려와 사람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환경오염으로 병든 나무가 늘어나며 개체수가 증가했고, 그 탓에 먹이 찾기가 힘들어져 인간세상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곤충’이 아니라 ‘벌레’라 불리기 시작했다.

아마 우리 가족이 여름내 싸운 다른 벌레들도 이 하늘소와 같을 것이다. 곤충으로서 어엿한 이름이 있을 테고 대부분 숲의 일원으로서 숲에 기여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숲 한쪽에 자리한 우리 집까지 넘어오기도 했던 것이고. 아마 이 이름 모를 곤충들도 조금 더 생활환경이 악화되면 숲 바로 옆 우리 집이 아닌 좀 더 밑 인간세상까지 내려갈 것이다. 하늘소가 그랬던 것처럼.

문득 우리 집을 찾아왔던 그 곤충들이 벌레가 아닌 난민처럼 느껴졌다. 삶이 팍팍해 잠시 숲 바로 옆집에 몸을 의탁했던 난민. 숲이 더 이상 병들지 않는다면 도로까지 내려가지 않고 자기 살던 곳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벌레’라고 생각했던 ‘곤충’들이 징그럽지 않게 느껴졌다. 물론 내년 여름에도 창문을 활짝 열지는 못할 듯하지만 적어도 곤충들의 무사한 귀가는 빌어줄 생각이다.

서필웅 체육부 기자  seose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