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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려 보이지 않는 세 나라 동맹 제2차 대전 중이던 1940년 9월27일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이 베를린에서 체결한 3국 동맹을 보는 눈은 제각각일 것이다. 그 동맹의 구성원들이 어딘지 모르게 서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도 그 하나일 수 있다.

우선 아시아 국가인 일본이 유럽 국가들과 동맹을 체결한 것 자체가 눈길을 끈다. 물론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중심이 된 동맹에 오스만투르크가 가담하기도 했으나 당시 그 나라는 아시아 국가라기보다는 유럽 국가에 가까웠다. 일본이 굳이 유럽 국가들과 편을 나눈다면 같은 섬나라인 영국에 가담하지 않고 독일 측에 가담한 것도 그렇다. 일본과 영국은 섬나라라는 공통점 말고도 오랜 친교가 있었지 않은가.

영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남하하려는 러시아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이용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1902년에 체결된 영일동맹이 그 예다. 노일전쟁에서 러시아의 발틱 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 하자 당시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영국이 허용하지 않은 것도 그런 것이다. 발틱 함대는 아프리카 남단까지 우회해야 했고 그로 인한 부담이 해전사상 유명한 패배로 이어진 셈이었다.

그뿐도 아니다. 일본은 영일동맹을 기화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에 가담했으며 특히 독일에 피해를 주었다. 영일 연합군이 산둥반도 일대의 독일 점령지역을 공격해 점령했으며 일본군이 사실상 주력이었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손잡은 것도 새삼 눈길을 끈다. 로마 시대 게르만족은 로마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고 결국 게르만족에게 서로마가 망했다. 그런 역사적 맥락은 그만두고도 두 나라는 ‘관현악의 나라’(독일)와 ‘오페라의 나라’(이탈리아)로 그 기질이 비유되기도 한다. 물론 그런 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 그 내면에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있었다. 일본이 동남아로 세력을 확장하자 영국과 이해관계가 충돌하기도 했다.

결국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상식이 참된 진리인 셈이었다.

양평(언론인)

△1958년 9월26일 버마(미얀마)의 네 윈 장군, 쿠데타로 집권

△1940년 9월27일 독·이탈리아·일, 베를린에서 3국 동맹 조약 체결

△1946년 9월28일 미 군정, 경기도 경성부를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

△1547년 9월29일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 탄생

△1961년 9월30일 유럽경제협력기구(OEEC)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확대개편

△1910년 10월1일 일본, 조선총독부 설치(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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