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올해 들어 핵무장 속도전에 몰입했다. 7월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했다. 8월 29일에 쏘아 올린 화성-12형 중거리 미사일은 일본 상공을 지나 북태평양 방향으로 2700여㎞를, 9월 15일에는 각도만 바꾸면 미군기지가 있는 괌 주변까지 이를 3700여㎞를 날았다. 9월 4일에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을 가진 수소탄급 핵실험도 단행했다. 북한이 이제 몇 번 더 실험을 거쳐 소형화된 핵무기를 장착한 미사일 실전 배치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미국은 군사조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대북 압박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중국을 더 조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최근에 낸 두 개의 결의안보다 더 강력한 제재안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별로 없다. 중국이 대북 원유 공급 차단과 같은 극약 처방을 내리지 않는 한 효과를 볼 마땅한 제재안이 없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기 전에 미국이 독자적으로 취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강력한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과 기업·금융기관 제재), 제한적 핵시설 폭격, 해상봉쇄, 사이버 전 등이 거론된다. 북한과 거래하는 은행들은 미국과 거래하지 못한다는 행정명령을 며칠 전 냈다. 이 막강한 금융제재에 중국은행들이 어찌 대응할지 주목된다. 핵시설 파괴와 같은 외과적 군사조치는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대남 보복공격을 우려해 뒷전으로 밀어 놓았다. 그러나 초조해진 워싱턴은 다시 이 카드를 꺼내기 시작했다. 동맹국인 한국 정부가 강력하게 반대하는 군사조치를 어찌 미국 정부가 취할 수 있겠느냐는 우리의 안이한 생각을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는 확실한 작전 안을 제시할 때 미국의 자국 방위 노력을 지지해줘야 하는 동맹국의 입장에서 이를 극구 반대할 수 있을 것인가. 북한의 미국 떠보기가 선을 넘어 화를 자초할 수도 있고, 미국 요원들에 의해 비밀리에 시도된 김정은 참수작전이 실패해 대남 공격을 불러올 수도 있다. 정부는 전쟁을 막겠다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가정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주민 대피 등 위기관리체제를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행정학 |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미국이 대화에 나서면서 북·미 간의 적대관계는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여전히 남한을 무시하면서 진정한 평화공존의 길로 나서지 않는다면 한반도에서 평화는 유지되겠지만 우리는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후퇴한 균형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씁쓸한 일단락이다.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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