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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명사형 사고’에서 ‘동사형 사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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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25 19:35:58 수정 : 2017-09-25 19: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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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를 중시하는 삶으로 전환해야”
“소유물이 적을수록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
남다르게 살고 싶다, 특별한 나만의 충만한 스토리를 연출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누구나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기가 쉽지 않다. 살다 보면 그만그만한 도토리 같은 삶의 형상에 때때로 실망하기도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에리히 프롬은 삶의 양식에서 그 문제의 원인을 탐문한 사회심리학자다. 산업사회의 문제를 점검하면서 새로운 인간의 가능성을 성찰한 ‘소유냐 존재냐’에서 그는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을 대조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결론은 명료하다. 권력이나 재산, 지위 등을 갖는 것을 추구하는 소유양식이 인간의 소외를 가중시키고 존재론적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으니, 소유를 지향하는 삶의 의식을 반성하고 존재 그 자체를 중시하는 삶의 태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존재의 능동성을 살리고 나날이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존재양식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만 있다. 반면 소유양식은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에 이끌리면서 현재를 끊임없이 유보하는 경향을 보인다. 왕년에 이런 사람이었어, 몇년 후면 달라질 거야, 그런 생각에 붙잡히면 삶의 희열로부터 멀어진다. 대신 지금, 여기의 삶을 자유롭게 만끽하며 완전하게 존재하려는 상상력을 계발할 때 존재값은 고양된다.

이런 논의과정에서 프롬이 언어생활의 변화를 주목한 대목에 새삼 눈길이 간다. 근대 이후 명사의 사용이 대폭 늘어나고 동사의 사용이 줄어들었다는 부분이다. 그는 ‘갖는다’는 동사의 목적어가 되는 명사들을 주목하며, 그 목적어에 이끌리면 주체의 ‘존재 상태’가 잠식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나는 괴로워하고 ‘있다’ 대신에 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주관적 경험은 배제된다. 경험하는 ‘나’가 소유의 ‘그것’으로 대치된다. 나는 내 느낌을 내가 소유한 무엇으로, 즉 문제로 변모시킨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온갖 종류의 곤란에 대한 추상적 표현이다. 나는 문제를 ‘가질’ 수 없다. 그것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가질 수는 있다. 바꿔 말하면 나는 ‘나 자신’을 ‘문제’로 변모시킨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의 창조물에 의해 소유당한다. 이런 어법은 감춰진 무의식적 소외를 드러낸다.”

프롬에 따르면 사랑도 그렇다. 삶의 중요한 가치인 사랑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과정이고, 사랑의 주체가 되는 내적 행동이다. 사랑에 ‘가지고’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사랑하거나 사랑에 빠지지 않고 사랑마저 소유하려 할 때 갈등이 생기고 싸움으로 비화된다. 그는 이렇게 쓴다.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욱 많이 사랑할 수 있다.”

평소 문장지도를 하면서 영어식 have동사 구문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을 지적한 바 있지만, 프롬처럼 그 무의식까지 헤아리지는 못했었다. 목적어 계열을 명사보다 주어의 상태에 집중하고 성찰하는 동사나 형용사, 부사가 넉넉해지면 그만큼 삶의 양식도 넓게 깊어질 수 있으리라.

언어가 곧 존재 아니던가. 그런데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여전히 동사보다는 명사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성찰해 볼 일이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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