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노동존중특별시’ 공무원의 죽음

관련이슈 기자가 만난 세상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7-09-29 20:50:37 수정 : 2017-09-29 20:53:3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직원은 시민이 아닙니까. 직원이 있어야 시민을 위해서 일할 것 아닙니까.”

지난 28일 저녁 서울시 본청 1층 로비에 앉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 아버지의 절규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는 지난 18일 자택 아파트에서 투신한 서울시 7급 공무원 A(28)씨의 아버지 B씨였다.

이창훈 사회2부 기자
B씨는 이날 동료들이 아들을 위해 연 이별식에 참석해 “나보다 더 품성이 바르고 성실하고 인내력도 강한 아이였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이별식에 참석한 A씨 동료들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A씨의 영정사진을 멀리서 멍하니 바라보던 한 동료는 “정말 성실하고 착한 친구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2015년부터 서울시에서 근무한 A씨는 지난 1월 예산과로 발령을 받았다. 청소년과에서 일하던 때와 달리 잦은 야근과 휴일 근무 때문에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는 말을 종종 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B씨는 아들과 밥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했다. 바쁜 아들을 위해 시청 근처로 나와서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아들은 “일이 많아서 밥 먹을 시간이 없다”며 아버지를 돌려보냈다.

“사람이 살자고 일하지 죽으려고 일하냐. 아들이 무엇을 위해서 일했는지 모르겠다.” B씨는 아들의 죽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초등학교 때 얼굴에 입은 큰 화상을 치료하느라 중학교 진학도 포기했으나 아들은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치료받으면서 검정고시로 중학교 졸업장도 땄다”며 “어릴 때 그 큰 상처를 입고서도 노력해 공무원이 됐는데…. 제발 철저히 조사해 죽음의 원인을 밝혀 달라”고 박 시장에게 당부했다.

A씨는 2011년 박 시장 취임 후 목숨을 끊은 일곱 번째 직원이다. A씨의 죽음을 추모하며 400여장의 포스트잇을 붙인 직원들은 개인의 문제 이전에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상사의 폭언과 업무 강요, 성추행 특별감사 해주세요.” “일을 줄여야 하고 지시사항을 줄이고 신규업무도 줄이자.” “시장님 주재 업무보고 건수를 줄여 주세요. 문서 고치고 또 고치고 에너지 소모가 너무 힘듭니다.” 포스트잇에는 바뀌지 않을 거라는 냉소적인 시각도 있었다. “당신이 갔지만 또…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더 두렵습니다.”

직원들이 지적한 문제는 앞서 서울시에서 자체적으로 진단한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서울시는 2015년 12월 공무원 두 명이 과도한 업무 때문에 잇따라 자살하자 대응책으로 ‘직원 중심의 행복한 일터 만들기 추진계획’을 지난해 3월 발표했다.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세부과제만 18개가 담긴 그럴싸한 대책을 내놨다. ‘업무부담 완화’, ‘초과근무 줄이기’, ‘신규임용자 조직적응 지원’. 세 가지 중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실천됐다면 A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난달 예산과 직원 31명은 1인당 평균 79시간의 초과근무를 했다. 그중 100시간이 넘는 직원이 5명이나 있었다. ‘야근 지옥’을 버티던 A씨는 과연 ‘노동존중특별시’의 공무원이었을까. 내부 직원의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서울특별시는 더는 ‘노동존중특별시’가 아니다. 이제는 서울시 공무원의 죽음과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박 시장의 결단을 촉구한다.

이창훈 사회2부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