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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일본의 교통사고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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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09 21:15:21 수정 : 2017-10-09 23: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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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조금 늦게 떠난 여름휴가 여행지 일본 오키나와(沖繩)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비행기 시간이 남아 시내에서 쇼핑을 하고 공항으로 출발했다가 그만 교통체증에 걸리고 말았다. 자칫하면 렌터카 반납은커녕 비행기마저 놓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비행기를 타기까지 예상되는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하니 운전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핸들을 크게 꺾어 무리한 차선변경을 한 건 마음이 급해진 탓이었다.

 

곧바로 들려오는 날카로운 경적음과 함께 작은 충돌소리. 룸미러로 확인하니 옆에서 주행 중이던 차량이 내 차를 피하다 다른 차선에서 오던 버스와 가볍게 충돌했다. ‘내 차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차를 몰았다.

 

이때부터 여행의 마지막 날은 제대로 꼬이기 시작했다.

 

사고 처리를 하지 않았던 건 ‘코리안 스타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직접 부딪치거나 고의로 다른 차량의 사고를 유발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책임이 없다.

 

하지만 ‘재팬 스타일’은 많이 달랐다. 사고가 났던 차량은 경적음을 반복하며 무섭게 쫓아왔다.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급정거를 하며 내 차를 막았다. 운전자는 매우 화가 난 목소리로 따지고 들었다. 일본어와 영어가 섞인 그의 말은 당최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분명히 들을 수 있는 한 마디는 있었다.

 

“Call the police(경찰 불러)!”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현지인과 시비가 붙었으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일단 그 일본인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난 건지부터 알아야겠기에 함께 렌터카 업체로 향했다. 일본어·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에게 사고 상황을 전했다. 설명을 들은 그 직원은 공항으로 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비행기 시간이 다 됐다고 했지만 “경찰이 사고처리를 하는 게 일본 법”이라고 꿈쩍하지 않았다.

 

 

김범수 사회부 기자

이 일로 사고의 책임 보상 50%를 지게 됐다. 비행기도 놓쳤다. 여러모로 속상한 일투성이였다. 하지만 작은 교통사고에도 공정성과 합리성을 철저히 적용하려는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을 체험한 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본의 교통사고 처리는 사소한 접촉사고는 물론 혼자서 담벼락을 들이받아도 무조건 경찰을 불러야 한다. 경찰 입회하에 사고 현장에서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 사소한 사고는 보험사를 불러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는 경우가 허다한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다른 점은 또 있다. 직접 사고를 내거나 고의로 사고를 유발하지 않더라도 일본에선 ‘무리한 끼어들기’를 과실로 인정한다. 사고 현장의 타이어 자국과 블랙박스를 확인해보니 내 차가 사고를 유발한 게 분명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했다.

 

경찰이 반드시 현장검증을 한 뒤 과실을 판단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보험사끼리 ‘짬짬이’로 과실측정을 할 수가 없고, ‘나이롱 환자’ 등 보험사기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어 보였다.

 

우리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소망하며, 그것의 실현을 위한 거창한 무언가를 기대한다. 하지만 일본의 ‘교통사고 신고 의무제’를 직접 경험하며 새삼 느낀 건 공정사회 역시도 생활 속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는 거였다.

 

김범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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