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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미치광이 트럼프가 부러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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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12 21:25:03 수정 : 2017-10-12 23: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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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 열흘에 달했던 추석 연휴에 ‘폭탄’이 날아들었다. 우려했던 북한의 핵실험은 아니었지만 미국으로부터 날아온 ‘통상 폭탄’은 평온한 연휴를 깨는 큰 충격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과 한국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을 동시다발로 퍼붓는 미국이 ‘과연 동맹국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동시에 트럼프가 외치던 ‘미국 우선주의’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독단적이며, 냉혹한 것인지 뒤늦게 실체를 마주한 느낌이다.

트럼프는 한국의 지정학적, 경제적 약점을 지렛대로 삼아 자신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 하고 있다.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통해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미국 공장 건설을 유도해 일자리를 늘리고, 외국 경쟁기업을 대상으로 세이프가드를 발동해 제조업의 부활을 도모하는 것이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이어 미국의 통상폭탄까지 맞게 된 기업들은 패닉 상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 각각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와 테네시주(州)에 세탁기 공장을 짓기로 하고 트럼프로부터 ‘땡큐! 삼성’이라는 인사까지 받았지만, 오히려 제재의 첫 번째 타깃이 됐다.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미국 언론에서조차 ‘WTO 제소감’이라며 트럼프 정부의 통상 제재를 비판하고 있지만,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이번 결정은 ‘미국 우선주의’의 서막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ITC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자국 세탁기업체가 피해를 봤다고 판정한 이상, 2002년 이후 16년 만에 세이프가드가 부활하는 것은 막기 어려워 보인다는 관측이 많다.

김수미 산업부 차장
문제는 세탁기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어떤 분야든 자국 기업이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면 트럼프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제재할 구실을 찾아 실행에 나설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트럼프가 이처럼 자유무역주의 정신을 훼손하고 국제무역질서를 위협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까지 마냥 비난하기는 어렵다. 우리 정부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지난해 시작된 중국의 사드 보복부터 미국의 통상 압력이 현실화되기까지 정부가 사면초가에 몰린 기업들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지는 짚어볼 일이다. 재계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기업들이 보복을 당하는데 정부는 뭘 하는지 맨몸으로 맞고 있는 기분이다”, “미국은 자국 기업의 무리한 요구에도 손을 들어주며 물불 안 가리고 도와주는데, 우리는 국내시장에서조차 기업을 개혁, 규제 대상으로 몰아붙이기만 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 전자업계 관계자들이 미국의 세탁기 세이프가드에 대비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지만, 여기서도 기업들은 기대하는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죽하면 미치광이라도 좋으니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대통령이 부럽다는 말이 나오나 싶다. 대체 실종된 경제외교는 언제쯤 돌아올까.

김수미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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