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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뉴스 팩트는 중요한 가치… 여론 좇아 기사 써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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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13 21:06:14 수정 : 2017-10-13 21: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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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뉴스, 이렇게 쓴다’ 펴낸 이건호 이대 교수 / 최근 감정적·주관적 기사 넘쳐 / 실체 전달보다 ‘말짓기’로 유인 / 기자는 가치 판단 정보전문가 / 믿을 만한 글 무언지 고민해야 / 10여년간 기자생활 뒤 학계로 / ‘언론계 입문’ 제자만 150여명 ‘다시 스트레이트다.’

언론 현장에 제자들을 내보낸 지 11년, 교수는 다시 기본을 들고 왔다. 최근 ‘스트레이트 뉴스, 이렇게 쓴다’를 출간한 이건호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다. 스트레이트(straight)는 팩트와 6하(何) 원칙에 입각한 정통 보도 기사를 말한다.
이건호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가 지난달 26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대 연구실에서 스트레이트 기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이 교수는 1994년부터 2005년까지 기자생활 중 언론계에서 바이스 캡으로 불리는 경찰청 출입기자 등 주로 사회부를 담당한 정통 민완기자 출신의 학자다. 2006년 학계에 몸담은 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인하대, 이화여대 등에서 그를 거쳐 간 제자 중 기자나 프로듀서(PD)로 언론계에 입문한 사람이 150여명이다. 총성 없는 취재 전쟁의 전장을 누비는 1∼10년 차 현장 기자들이다.

이 교수는 최근 펴낸 저서에서 뉴스를 전하는 기호가 글에서 영상으로, 나아가 다양한 감각으로 변해가더라도 스트레이트 뉴스에 담긴 팩트(fact·사실)에 대한 엄밀성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캠퍼스 내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내러티브 글쓰기가 유행하는 시대, 효용이 다한 기계적 글쓰기로 오해받는 스트레이트라는 형태의 의미를 숙고(熟考)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저서에서 최근 우리 언론계에 대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글들이 범람하면서 이 정보들이 사안의 실체를 전달하기보다는 그 글을 쓰는 개인들의 의견을 부각하는 식으로 흐르는 경우가 더 많다”며 “뚜렷한 근거 없이 흘러다니는 정보의 편린들을 이어붙이며 그럴듯한 정황을 뉴스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국 정형화된 글 읽기에 지친 독자들을 이슈의 핵심으로 이끌기 위해 확인된 정보를 소설적 글쓰기 형태에 담는다는 내러티브 기사 작법의 원래 취지는 사라지고 그 글쓰기 기법을 부정확한 정보를 잇는 현란한 말 짓기로 활용하면서 오보와 루머가 확대재생산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스트레이트 기사를 중심으로 기사를 연마하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일 수 있다. 기자들이 적게는 한두 달, 길게는 6개월씩 혹독한 수습 생활로 기자생활의 첫발을 뗄 때 스트레이트 기사 틀을 공식처럼 외운다. 살인, 절도, 화재 등 사건·사고 기사를 유형별로 기자 수첩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인쇄해 붙이고 다녔다는 이야기, 손가락에서 자동으로 나올 때까지 연습했다는 이야기들은 초년병 기자들이 듣는 선배들의 전설 같은 경험담이다.

이 기간은 단지 공식을 위한 공식을 암기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스트레이트 공식을 외우고 훈련하는 수습기자 생활은 가령 ‘∼를 살해한 혐의로 A씨를 구속했다’를 ‘∼를 살해한 A씨를 구속했다’고 보고했을 때 선배의 꾸지람을 맛보며 ‘혐의’라는 단 두 글자의 엄중함을 몸에 각인하는 날들로 채워진다.

‘혐의’라는 두 글자로 A씨의 운명은 뒤바뀌며, 법적으로는 수사단계인지 판결단계인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엔 ‘살해한’과 ‘살해한 혐의로’가 뒤섞인 기사들이 온라인에 범람한다. 이 교수는 형태(형식)가 무너지면서 내용도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언론은 가짜 뉴스가 생산됐던 사실까지 정리해서 다시 기사로 쓸 수밖에 없다”며 “자정작용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함께 치러가는 기회비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온라인시대가 되면서 기자로서는 과거에 할 필요가 없던 일이 생긴 셈이지만, 이런 현상들을 자정작용에 맡겨야지 규제나 제재로 몰아가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기자는 모든 것을 아는 전문가가 아니며 전달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정보전문가”라며 “여론이 흘러가는 쪽으로 미리 주제를 잡고 그에 맞는 기사를 생산하려 한다면, 스스로 정보판단의 전문가로서 기자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독자들이 믿을 만한 글이 무엇인가를 기자들이 고민하고, 그런 글을 보냈을 때 독자들이 과연 얼마나 믿었는지, 그러한 피드백을 통해 100년의 역사 동안 만들어진 글이 스트레이트”라며 “이 형태의 가치, 형태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이 틀에 담은 사실의 엄중함을 인식해야 하며, 이 연습은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 기자가 된 사람도 꾸준히 훈련해야 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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