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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마지막 열매들을 익게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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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16 21:24:08 수정 : 2017-10-16 21: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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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은 가을이 오면 영혼의 성숙 모색
내 열매에 단맛 더하기 위해 무엇을 할까
긴 연휴를 보내고 나니 가을이 무르익었다. 기후 변화로 인해 가을이 무척 짧아졌다. 그러다 보니 넉넉한 가을 풍경을 느낄 시간이 많지 않다. 예로부터 시인들은 가을이 오면 예찬하거나 성찰하는 시편들로 영혼의 성숙을 모색했다. 고트프리트 벤이 “나비와 꽃들이/ 가을 통로에/ 그렇듯 깊은 무늬를 새긴다”(‘9월’)고 적었을 때 우리는 그 깊은 무늬가 풍경의 무늬이자 내면 정경의 무늬임을 감각하게 된다.

‘가을에’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가을 풍경을 낭만적으로 형상화한다. “다시 가을은 찾아와서/ 태양은 그 빛과 힘을 더하고/ 맑고 충실한 대지는/ 온통 풍요롭게 완성된다./ 젖과 꿀 같은 것 꿈과 같은 것이며/ 온갖 빛깔 고운 열매들이/ 모두 결실하여 차례로 가루가 되고/ 풍요 속에 빛나면서 큰 그릇마다 넘친다.” 그러면서도 그 풍경의 심연에서 가을의 위대한 의미까지 명상하고 또 가난한 집의 이야기를 성찰하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울프가 담으려 했던 가난한 집의 이야기는 어쩌면 가을의 울부짖음이기도 했으리라.

알렉산드르 블로크는 ‘가을 오후’에서 추수가 끝난 논의 그루터기를 따라 걸으며 헐벗은 나의 나라를 응시하며 그 울부짖음을 듣는다. “낮고 헐벗은 마을들은/ 셀 수도 없고, 눈으로 헤아릴 수도 없다.” 헐벗은 나라의 울부짖음은 어디서 오는가. “꽃과 열매와 낙엽이 그렇듯이/여름이 끝나자 노래하던 새들 떠나가고/텅 빈 둥지만 남아”(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초가을 달’)는 공간에서라면 바이올린 화음마저 울부짖음에 가까울 수 있다. 그래서 폴 베를렌은 노래한다. “가을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단조로운 우수에/ 내 마음/ 아파오네.”(‘가을의 노래’)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면 우수에 젖어 상실감에 빠지기도 한다. 낙엽만 지는 게 아니다. 사랑의 정열도 시들 수 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사랑마저 메마른 계절의 비애를 묘사한다. “사랑이 시드는 계절이 닥쳐와/ 지금 우리의 슬픔 영혼은 지치고 피곤하다./ 우리 헤어지자, 정열의 계절이 다 가기 전에/ 그대 수그린 이마에 키스와 눈물을 남기고.”(‘낙엽’) 반면 한용운은 “푸른 산빛을 깨지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님의 침묵’) 님은 떠났지만 여전히 사랑의 노래를 부르겠다는 시적 의지를 환기한다.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서시’) 괴로워하며 부끄러움 없이 살겠다고 성찰했다.

나태주는 가을에 타인을 위한 고즈넉한 기도의 정서를 전한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있음을 환기하면서 멀리서나마 빈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멀리서 빈다’) 그리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있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판에 바람을 놓아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십시오./ 그들을 재촉하여 원숙케 하시고/ 마지막 남은 단맛이 포도송이에 스미게 하소서.”(‘가을날’)

여름을 견디며 열매 맺으려 했던 우리의 결실은 무엇이었을까, 어느 정도 원숙했을까, 내 열매에 단맛을 더하기 위해 이 가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저런 생각이 많은 때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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