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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가서 차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인적도 없는 조용한 곳에 허름한 기사식당이 하나 나타났다. ‘몸국’(모자반을 넣어 끓인 국) 등 관광지 식당에서는 볼 수 없었던 토속음식을 팔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뜨끈한 몸국 한 그릇씩을 맛있게 먹은 우리는 둘이 합쳐 1만원 남짓한 저렴한 밥값을 치렀다. 주인아주머니는 “여행하면서 먹으라”며 묵직한 귤 한 봉지를 손에 쥐여 주기까지 했다.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제주 여행의 따뜻한 추억이다.

이후 몇 차례 제주도를 찾았지만 이런 가게들은 하나둘 사라져 갔다. 대신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당들이 생겨났다.

백소용 경제부 차장
최근 찾아간 제주도 애월읍은 그야말로 ‘핫플레이스’였다. 이제는 한적한 곳에 기사식당 대신 푸드트럭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매일 그날의 판매장소를 공지하고 사람들은 이를 쫓아다니며 ‘푸드트럭 투어’를 즐긴다. 스타가 운영한다는 카페, 독특한 메뉴로 경쟁하는 이른바 ‘인스타 맛집’들도 필수코스가 됐다.

맛집이라 주장하는 집은 많지만 진짜 맛집을 고르기는 더 어려워졌다. 혜택을 가장한 광고가 너무 많아서다. 제주도행 비행기표와 렌터카를 예약하자마자 예약확인 메시지와 함께 전자쿠폰 수십장이 스마트폰으로 전송됐다. 제휴 카페에서 음료나 음식을 주문하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무료로 준다는 쿠폰이었다. 제주도에 도착해 렌터카에 타니 알 수 없는 기준으로 선별된 음식점과 카페가 내비게이션에서 쏟아져 나왔다. 포털사이트에서 제주도 맛집을 검색하자 음식점 파워링크(광고), 포털사이트를 통해 예약할 수 있는 음식점 리스트 등이 나왔다. 현지인인 숙소 직원과 슈퍼마켓 주인 등에게 물어봤는데 “옛날엔 제법 있었지만 이제 이 동네엔 맛집이 없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결국 블로거 여러 명이 맛있다고 칭찬한 근처의 맛집을 하나 검색해서 찾아가 봤다. 맛이 없진 않았지만 음식의 질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쌌다. 구석에 안내문이 보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후기 올리고 음료수 무료로 먹자.” 음식점이 흔히 사용하는 홍보 방법이다. 애써 광고를 피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음료수 하나와 바꾼 게시물을 보고 온 셈이었다.

다음날에는 어쩌다 보니 관광지도 아니고 민가만 드문드문 보이는 곳에서 점심시간을 맞았다. 어떻게 봐도 관광객을 유혹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는 기사식당 풍의 식당 세 개가 나란히 있길래 그중 한 곳에 들어갔다. 7000원짜리 백반을 주문하자 어른 손바닥만 한 노릇한 병어구이와 푸짐한 제육볶음, 다양한 밑반찬이 함께 나왔다. 젊은 사장은 무심한 듯 자신감 넘치게 “해산물은 제주도에서 잡은 것만 쓴다”고 말했다.

우연히 먹게 된 이 점심이 이번 제주도 여행 중 가장 맛있는 한 끼였다. 비단 제주도뿐일까. 정보 홍수의 시대, 관광지에서 플랫폼 업체나 모종의 거래를 거치지 않은 순수한 정보를 구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행까지 가서 검증된 맛집을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차라리 자신의 운을 믿고 아무런 정보 없이 숨은 맛집을 탐색해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백소용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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