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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의 큰스님 “신심·원력·공심으로 불교 부흥”

입력 : 2017-10-24 20:28:27 수정 : 2017-10-24 21: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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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총무원장 취임하는 설정 스님  “네가 남의 물건에 손댔다는구나. 어찌 된 일이냐?” “그런 일 없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바른대로 말해라.” “안 그랬습니다!”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76·사진) 스님에 얽힌 일화다. 열한 살 난 아들이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는 회초리를 들었다. 일제강점기 충남 예산에서 주역의 대가로 이름을 날린 아버지는 ‘사람은 어느 경우에도 강직하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 장부다운 삶’임을 강조한 대쪽 같은 선비였다. 베틀의 뱁댕이 막대 몇 개가 부러지도록 맞은 아들은 집을 나왔다. ‘나는 집과 인연이 없는가 보다’고 생각한 아들은 낮부터 내린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던 저녁 나절, 맨발로 30여 리의 길을 무작정 걸고 또 걸었다. 그 일로 동상에 걸려 발을 자를 뻔했다.

이후로 아버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끝장을 보는 아들의 성정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 아들이 오는 31일 제35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하는 설정 스님이다. “무슨 일이든 정성을 다하자”는 게 스님의 철학이다.

오는 31일 제 35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하는 설정 스님은 “위기에 몰린 종단을 개혁하고 신도의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신문 제공
종단 원로회의 좌장인 종회의장을 지낸 이후 2009년부터 수덕사의 방장으로 추대된 스님은 후학 양성의 길을 걸었다. 이번 총무원장 선거 당시 학력 위조 또는 은처자 얘기가 나올 때마다 스님은 담담했다. 오히려 “내가 당선돼 못된 종단 풍토를 바로잡아야겠다”며 결의를 보였다. 사실 이번 총무원장 선거는 삼류 정치판과 다름없는 타락상을 보였다. 스님을 욕보일 요량으로 일부 징계승들은 사력을 다해 헛된 소문을 퍼뜨렸으나 스님은 이겨냈다. 선거 직후 조계종 안팎에선 “설정 스님은 ‘큰스님’이다. 스님의 살아온 길이 얼마나 올곧고 담박했는지 새삼 드러난 선거전이었다”면서 “이미 되었어야 할 인물”이라고 당연시했다

스님 특유의 강직함은 유명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 4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임명된 수덕사 주지 시절이었다. 주지를 맡은 지 1년도 채 안 된 1980년 계엄군에 의해 자행된 10·27법난의 시작이었다. 느닷없이 군인 몇명이 수덕사 대웅전을 짓밝고 들어와 스님을 대전 보안대로 끌어갔다. 스님은 신문을 당하면서도 잠을 자지 않은 채 단식하며 좌선했다. 매일같이 군부를 지지한다는 조서를 쓰라고 윽박지르는 군인의 강요에도, 한 줄 쓰지 않고 버텼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나가서 얘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는 요구도 단호히 거절했다. 고문으로 부러진 몽둥이가 널부러져 험악한 보안대 지하 감방에서 그렇게 열흘간 버티다 석방되었다. 그 얼마 후엔 사회에 기여한 공로로 표창장을 받으러 서울로 오라는 얘기를 듣고선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어릴 적 부친에게 오해받아 매 맞을 당시에도 ‘아닌 것은 아니다’고 버틴 스님의 뚝심이었다. 

1975년 수덕사 분규 사태를 해결하는 데 스님은 수완을 발휘했다. 당시 수덕사의 일부 관계자와 사기꾼이 결탁하는 바람에 절 소유 땅이 팔려 나갔고, 일주문 앞에까지 가게들이 들어찼다. 스님은 재판 열 건을 모두 이겨 원금을 돌려주고 팔린 땅을 되찾았다. 이때 췌장암을 얻어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또 한 번 스님은 참선 기도에 집중해 암을 이겨냈다. 한번 걸리면 대부분 사망에 이른다는 췌장암을 이겨낸 경험으로, 스님은 삶과 죽음에 대한 집착을 끊어낼 수 있었다.

스님은 “죽음이라는 위기 앞에서 수행자 본연의 삶을 선택한 것은 결국 나의 의지를 시험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20대 후반 늦깎이 대학생이 되려고 공부했으나 시험에 떨어졌고 땡전 한 푼 없었다.

“생을 놓아 버리려고 생각했지만 너무 배가 고팠다. 두 달 동안 목포에서 해남까지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면서 나락을 줍는 일도 거들어 주고 밥을 얻어먹었어. … 밥이며 잠자리를 내 손으로 해결하는 절박하고 극한 상황에 나를 몰아넣고 내가 어떤 사람인가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너무 나약했고 덜 치열했고 덜 하심(下心)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설정 스님의 설법은 알아듣기 쉽다. 선사들의 말이나 경전을 인용하기보다 자신의 언어로 바꿔 부처의 설법을 전한다. 유연한 마음으로 한 수행법만을 고집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개성적인 수행법을 따른다. 스님은 젊은 시절 온몸으로 부딪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넓고 깊어진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승려는 먹을 것, 입을 것, 잠, 이렇게 세 가지가 부족해야 하며 공부와 노동이 함께해야 힘 있는 공부가 된다”면서 승려가 가지고 있어야 할 세 가지 생명줄로 신심, 원력, 공심(公心)을 들었다. 스님은 “60여 년 동안 이(理)와 사(事)를 겸비하여 수행에 매진해왔다”며 “수행자로서 결코 시간을 허비하며 살지 않았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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