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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盧 대사에 조선상고사 一讀을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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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24 21:02:18 수정 : 2017-10-24 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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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민 주중 대사 기자간담회서
“중국 역사상 한족의 통일왕조는
주변국의 영토를 복속한 적 없다”
그럼, 우리가 겪은 외침은 뭔가
중국특파원 시절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의거지 하얼빈(哈爾濱)과 순국지 뤼순(旅順)감옥을 취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뤼순감옥이 단재(丹齋) 신채호(1880∼1936) 선생도 옥사(獄死)한 곳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단재는 일제강점기의 혁명가, 언론인, 사학자로서 국권을 회복하고자 모든 수단을 강구한 인물로 국사 연구와 교육을 중시했다. 그가 쓴 글 중에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가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 활동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요, 조선사라 하면 조선민족이 이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다”는 글귀가 총론 서두에 나온다.

김청중 외교안보부장
조선상고사에서는 한 인간의 주체적 역사인식이 잘 드러난다. 일제강점기에 쓰였기 때문에 일본과 관련된 내용이 많을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주로 중국에 대한 것이다. 조선상고사에서는 중국을 중국이 아니라 지나(支那·China의 가차·假借)나 우리 서쪽에 있다는 뜻의 서국(西國)으로 표현한다. 고구려(高句麗)라는 이름은 순우리말 ‘가우리’의 이두자(吏讀字)이고, 가우리의 원뜻은 중경(中京) 또는 중국(中國)이라고 했다. 서쪽에 있는 저 나라가 중국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의 중심(中國)이라니 얼마나 담대하고 통쾌한가.

조선상고사를 읽다 보면 과거 중국 왕조가 우리 민족의 나라를 침략하던 패턴을 엿볼 수 있다. 일단 중국 왕조가 외정(外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국력이 넉넉해야 한다. 두 번째 우리 민족의 나라에 중국의 패권(覇權)을 인정하고 머리 숙이고 들어오라며 입조(入朝·속국이 된다는 의미)를 요구한다. 세 번째 입조 거부 시에는 ‘네 땅이 원래는 우리 땅’이라는 식으로 역사를 왜곡해 침략의 명분을 확보한 뒤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작금의 한·중관계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재는 70여년 후 동북공정을 미리 내다본 듯 “당태종이 고구려를 치려 하여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남사(南史), 북사(北史) 등에 보인 조선에 관한 사실을 가져다 자기네에게 유리하도록 안사고(顔師古·581~ 645) 등으로 하여금 곡필(曲筆)을 잡아 고치고, 보태고, 바꾸고, 억지의 주(註)를 달아서, 사군(四郡·낙랑 임둔 진번 현도군)의 연혁이 가짜가 되고 역대 두 나라의 국서가 더욱 본래대로 전해지는 것이 없게 되었다”고 했다.

단재 이야기를 꺼내든 것은 지난 10일 현지에 부임한 노영민 신임 주중 대사 탓이다. 노 대사는 지난달 29일 외교부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중국 역사 5000년간 한족(漢族)이 지배한 통일왕조는 막강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해 주변국을 영토적으로 복속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았다”, “중국에는 침략의 유전자가 없다”고도 했다.

노 대사의 이 같은 역사인식은 중국의 입장을 옹호한 듯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발언보다 더 심각하다. 노 대사의 말이 맞다면 도대체 우리가 그동안 겪은 900여차례의 외침(外侵)과 전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중국의 통일왕조인 한나라는 고조선을 공격했으며 수나라와 당나라도 고구려를 침략했다. 특히 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붕괴시켰다. 900여차례의 외침과 전쟁의 상당수가 중국과 관련됐다.

중국인에게 침략의 유전자가 없다는 것은 사실 현재 한족을 중심으로 한 중국 주류의 역사인식을 반복하는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은 “중화민족의 피에는 남을 침략하거나 세계를 억눌러 제패하려는 유전자가 없다”고 수차례 밝혀 왔다.

중국과 갈등하고 싸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가 격동하는 상황에서 노 대사와 같은 역사인식을 갖고 어떻게 우리의 입장을 관철하고 국익을 극대화할지 심히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중국 고관대작(高官大爵) 앞에서 한시(漢詩)나 몇 수 외운다고 한·중관계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된다면 조선상고사를 일독했으면 한다.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걸어왔는지를 반추(反芻)하고 대중(對中) 외교에 진지하게 임하기 바란다.

김청중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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