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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어머니처럼… 보면 볼수록 예쁜 섬

입력 : 2017-10-28 11:49:16 수정 : 2017-10-28 11: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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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 쑥섬 /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 양심 돈통. 섬 어디에도 때 묻은 계산속이 없다 / 몸이 성치 않은 어머니가 자식들을 길러낸 그 섬 / 아들은 어머니 모시듯 섬을 가꿨다 “어머니, 옛날에 사시던 섬 예쁘게 가꾸고 있어요.”

“그래. 잘하고 있구나.”

다음 날이 되면 이런 대화는 다시 됐다.

“너 섬에서 무슨 일 한다며?”

“예. 섬에 길도 만들고, 꽃도 심고 있어요.”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어머니는 같은 질문을 다시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어머니가 장애가 있다 보니, 어릴 적 그의 삶은 매우 궁핍했다. 몸이 성치 않았지만, 어머니는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또 외할머니 등 외가와 이웃들도 사정을 알고 쌀과 반찬을 나눠주며 어려운 이들을 도왔다. 힘든 상황에서도 반듯하게 자란 그는 선생님이 됐고, 아내는 약국을 운영하며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다.

전남 고흥 쑥섬의 별정원은 이맘때 국화, 코스모스를 비롯해 구절초, 샐비어, 니포피아, 노랑 달리아 등 가을꽃이 만발한다. 바다 위에 정원이 펼쳐진 느낌이다.
2000년 아내와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얘기하던 그는 사회사업에 대한 꿈을 꺼냈다. 어릴 적 기억 때문이다. 그와 형제들을 돌봐주던 외할머니와 이웃 주민에게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전남 고흥의 쑥섬(애도)을 조금씩 사들여 가꾸기 시작했다. 15년 넘게 쑥섬을 가꾼 김상현(49)·고채훈(46)씨 부부는 마을 주민들과 상의해 지난해 6월 쑥섬을 일반에 개방했다.

쑥섬은 고흥 나로도여객선터미널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작은 섬이다. 배로는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나로도여객선터미널에선 배가 뜨지 않는다. 터미널에서 500m가량 떨어진 나로도수협 부근에서 사양호를 타야 갈 수 있다.

갈매기 한 쌍이 마주보고 있는 형상을 한 ‘양심 돈통’.
쑥섬의 갈매기카페.
쑥섬 선착장에 내리면 갈매기 한 쌍이 마주보고 있는 ‘양심 돈통’이 눈에 띈다. 입장료는 5000원이다. 쑥섬의 탐방로를 가꾸고, 정원을 다듬는 등 마을을 가꾸는 비용에 쓰인다. 시작은 갈매기카페부터다.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무인 카페다. 냉장고의 음료수를 꺼내 마시고, 돈을 돈통에 넣으면 된다.

김씨 부부가 건물을 세우고, 산책로를 조성했지만 운영수입은 20여명의 마을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화장실은 카페에 들러야 한다.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 1∼2시간 걸리는데, 중간에 화장실이 없다.

갈매기카페를 지나면 바로 ‘헐떡길’로 이름 붙여진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카페를 지나면 바로 헐떡길로 이름 붙여진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가파르긴 해도 구간은 짧다. 언덕을 오른 후부터 본격적인 섬 탐방이 시작된다. 섬 주민들의 환영 인사 표지판을 지나면 쑥섬의 속살 원시림이 펼쳐진다. 덩굴들은 우거져 있고, 나무들은 위로 가지를 뻗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대부분 서어나무, 후박나무, 육박나무 등 숲이 가장 안정화된 곳에서 자란다는 나무들이다. 특히 숲 한가운데 후박나무 한 그루가 쓰러질 듯 버티고 서있다. 당산할머니나무란 별칭처럼 입구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섬에 해코지할 사람들이 찾으면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쑥섬 ‘환희의 언덕’에선 길게 뻗은 언덕과 탁 트인 바다, 멀리 보이는 섬들이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만날 수 있다.
원시림을 지나치면 ‘환희의 언덕’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딘지 헷갈리지도 않는다. 우거진 수풀을 벗어나 앞서가던 일행이 내는 탄성이 들린다. 섬에서 길게 뻗어있는 언덕과 탁 트인 바다, 멀리 보이는 섬들이 이루는 풍광에 자연스레 마음속 감탄이 나오는 곳이다. ‘만만하다’, ‘마땅하다’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몬당하다’에서 나온 ‘몬당길’을 지나면 쑥섬의 절정 별정원에 이른다. 쑥섬 산책길을 조성한 김씨 부부가 특히 정성을 들인 곳이다. 이맘때는 국화, 코스모스를 비롯해 구절초, 샐비어, 니포피아, 노랑 달리아 등 가을꽃이 만발해 있다. 섬 밖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비밀의 화원이 사방으로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바다 위 정원이 따로 없다.

쑥섬 정상 표지판.
쑥섬에는 개와 닭, 무덤이 없다. 대신 고양이들이 많다.
정원의 감동에서 어렵사리 헤어난 후 발걸음을 성화등대로 옮긴다. 등대 가는 길에 쑥섬 정상(해발 83m)을 지나친다. 여자, 남자들이 나들이를 즐긴 산포 바위와 행실이 좋지 않던 중이 빠져죽었다는 ‘중빠진 굴’을 지나면 등대다. 등대에서 평지길을 따라가면 다시 선착장으로 이어져 있다. 되도록 쑥섬에선 일몰을 보고 나오는 것을 추천한다. 등대나 별정원에서 보는 풍광을 추천한다. 다만 뭍으로 돌아가는 배가 그 전에 끊기기 때문에, 미리 어선을 섭외하거나, 섬 안의 민박을 예약해야 한다. 쑥섬에는 개와 닭, 무덤이 없다.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제가 열리는데 개나 닭의 울음소리는 부정을 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신 고양이들이 많다.

쑥섬과 뭍을 연결해주는 사양호.
배를 타고 나오며 보는 쑥섬의 겉모습은 볼품없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겉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에 들어서면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풍광을 품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쑥섬을 어머니의 섬, 여자의 섬으로 부른다고 한다. 반면 그 옆의 사양도는 두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어 남자의 섬이라고 불린다.

김씨 부부가 애쓰면서 조성한 섬을 어머니는 보지 못했다. 돌아가신 2010년엔 산책로조차 정비되지 않았을 때다. 김씨 부부는 별정원 인근에 어머니를 위한 작은 공간을 만드는 중이다.

쑥섬(고흥)=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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