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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의창]조선시대 과거시험과 지역 인재 할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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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26 21:22:43 수정 : 2017-10-26 23: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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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대전, 초시 합격자 도별 정원 규정/지역 균형·능력 적절히 조화시킨 제도
최근 정부에서는 혁신 도시 등 지방에 이전한 공공기관이 인력을 채용할 때는 30%를 해당 시도 학교 출신을 뽑아야 한다는 ‘지역 인재 채용 목표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수도권에 인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는 인재의 지역 할당제를 적극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이미 인재의 지역별 균형 선발을 시행한 역사가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 필요한 관리를 뽑는 과거(科擧)제도가 정착됐다. 고려 광종 때 중국 출신 귀화인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처음 실시한 과거제도는 조선사회가 관료사회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과거에 합격하면 관직에 진출해 관리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문반이나 무반이 돼야 양반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많은 사람이 인생을 걸었다.

과거시험은 크게 소과(小科)와 대과(大科)로 나뉘었는데, 소과에는 생원시(生員試)와 진사시(進士試)가 있어서 생원시라고도 했다. 생원시는 주로 사서(四書)와 오경(五經) 등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를 시험하는 것이었고, 진사시는 문장력을 알아보는 시험이었다. 소과에 합격해 생원이나 진사가 되면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소설 허생전 속 주인공 ‘허생원’이나, ‘최진사댁 셋째 딸’의 ‘최진사’는 소과에 합격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성균관에서 수학한 생원이나 진사는 출석점수인 원점(圓點) 300점 이상이 돼야 대과(문과)에 응시할 수 있게 해 성실성을 관리 선발의 주요 기준으로 보았다.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에는 아예 소과와 대과의 초시 합격자의 도별 정원을 규정해 놓았다. 1차 시험에서 생원, 진사 각 700명을 뽑는 소과에서는 한성부(200명), 경기도(60명), 충청도(90명), 전라도(90명), 경상도(100명), 강원도(45명), 평안도(45명), 황해도(35명), 함경도(35명)로 도별 인구수에 의거해 인재를 할당했다. 소과의 최종 합격자 수는 생원, 진사 각 100명으로 이는 철저히 성적순으로 했다. 대과의 경우에도 1차 합격자 정원 240명은 성균관(50명), 한성부(40명), 경기도(20명), 충청도(25명), 전라도(25명), 경상도(30명), 강원도(15명), 평안도(15명), 황해도(10명), 함경도(10명) 등으로 역시 지역 할당제를 실시했다. 문과의 최종 합격자수는 33명이었으니, 1차 합격자 7명 중 1명 정도가 실력에 의해 최종 합격자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소과와 문과 공히 1차 시험인 초시에서는 지역별로 인재 할당을 하고, 2차 시험인 복시(覆試)에서는 성적에 의해 인재를 뽑았으니, 과거시험은 지역 균형과 능력을 적절히 조화시킨 제도였음을 알 수 있다. 3차 시험에 해당하는 전시(殿試)는 왕 앞에서 보는 면접시험이었다. 과거에 합격한 유생은 합격증서를 받았는데, 소과 급제자는 흰 종이에 쓴 백패(白牌)를, 대과 급제자는 붉은 종이에 쓴 홍패(紅牌)를 받았다.

조선시대 인재 등용문의 역할을 하던 과거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을 거치면서 폐지됐지만 지역 인재 할당제의 취지는 오늘날 다시 부활하고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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