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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12년 유화·주전론 다 실패/발상의 전환 시급한 시점/미·북 벼랑끝전술 위기 못 넘어/정전체제 끝낼 평화협정 논의해야 2005년 2월10일 북한이 판을 엎었다.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것이다. 사흘 뒤 일요일 대통령 관저. 노무현 대통령의 격한 발언이 터져나왔다. “핵을 가진 북한과 함께 살 수 있는가. (북한에) 단호하게 입장을 전달하고 결단해야 한다. 개성공단 문제를 재검토하라. 금강산 관광사업도 확장은 곤란하다. 한국도 핵무기 보유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중국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어떤가.”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은 저서 ‘칼날 위의 평화’에서 “나중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도 대통령은 이날처럼 분노하지 않았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격앙했지만 본때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회의에서 언급한 내용은 실행하지 못했다. 남한을 무시하는 북한이 괘씸해도 전쟁을 막아야 하는 곳은 가진 게 많은 남한이기 때문이다.

평화협정 카드는 그때 나왔다. 그해 7월 북한은 외무성 명의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과 비핵화 연계’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면 비핵화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을 ‘폭정의 전진기지’라며 몰아세우던 미국 부시정부는 핵포기를 먼저 해라, 그러고 난 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나서자고 역제의했다. 우여곡절 끝에 평화체제와 비핵화 협상의 연계를 합의한 9·19 공동성명이 나왔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싹을 틔운 것이다.

이를 계기 삼아 미·북이 평화협정 담판을 지었다면 최악의 북핵 위기를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을 터. 그래도 아쉬움이 크다. 눈을 먼저 움찔하지 않겠다는 벼랑끝전술(brinkmanship)이 최대 걸림돌이었다. 9·19 성명이 나온 지 얼마 안 돼 방코델타아시아 돈세탁 적발사건이 터지면서 미국이 다시 제재의 칼을 뽑고 북한이 2006년 10월9일 1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평화체제의 싹은 짓밟혔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노 대통령이 북한의 배신에 분노한 지 12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북핵 위기는 타개되지 않았다. 북한은 노무현의 친구인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자 도발 속도를 더 높였다. 6차 핵실험에다 미국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쏘아올렸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남한 정부를 길들이듯 궁지로 몰아넣는 게 북한의 고전적 수법이다.

북한이 체급을 대폭 높인 것은 사실이다. 핵보유가 기정사실이 됐으니 비핵화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을 장착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미국이 죽기 살기로 나서는 국면이다. 핵폭격기가 북한 영공을 넘나들고 있다. 세계가 북한을 규탄하고 중국마저 격노해 포위망을 좁히는 데 가세했다. 우리에겐 핵인질의 위기지만 북한에겐 생존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숨가쁘게 도발하던 북한이 9월15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잠잠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에서 김정은 조롱이 사라진 것도 한 요인이 됐을 것이다. 외무성 최선희 국장이 지난 주말 모스크바에서 “미국과 북한이 공존하는 출구(way out)가 있을 것”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감지된다.

출구론은 포괄적 합의를 통해 남북관계, 미·북관계 개선을 먼저 하자는 것이다. 그다음에 비핵화 논의를 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미·북 간, 남북 간 평화협정을 맺고 미군 철수 논의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위험 부담이 크긴 하나 64년이나 된 정전체제를 극복하지 않고는 한반도의 평화는 요원하다. 강대국인 미·중, 러시아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한다.

12년 전 노무현정부가 더 단호했거나 미국이 조금만 인내했다면 북핵사태는 호미로 막을 수도 있었다. 지금은 포클레인으로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동안 그 어떤 유화론도, 그 어떤 제재도 통하지 않았다. 발상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한반도에 어둠이 짙다. 뒤집어 생각하면 새벽이 가깝다는 말도 된다. 북한의 숨은 의도가 있더라도 평화체제 구축의 불씨는 살려놓고 보는 게 중요하다. 핵을 가진 북한과 함께 살지 않겠다는 결단만 있으면 출구에서 협상장으로 들어가는 역주행을 두려워할 상황이 아니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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