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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기침 에티켓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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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27 20:58:58 수정 : 2017-10-27 23: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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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한달간 기침을 하며 유독 심하게 감기를 앓았다. 가볍게 터져나온 밭은기침이 아니라 목구멍 아래 깊은 곳에서 밀려나온 투박한 숨소리였다. ‘그냥 감기겠지’라며 애써 무시했지만 한달째 접어들자 ‘다른 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달이나 지속되는 기침은 단순 감기가 아니라 기관지염이나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일 수 있다”는 지인의 조언에 심장이 졸아들었다. 큰 병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고 기침은 멈췄다. 결국 그냥 감기였다.

그때부터 아이 엄마가 된 이후 느꼈던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게 됐다. 이제는 아프면 잘 낫지 않는다, 그래서 아파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뒤 아파도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바이러스는 내 몸에 오래 머물며 괴롭혔다. 감기는 단순히 귀찮은 질병이 아니라 무서운 질환이 됐다. 아이는 걸리기만 하면 열이 펄펄 끓었다. 아픈 와중에도 아이에게 옮기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이렇다보니 환절기가 되면 강박증에 시달렸다. 일종의 환시까지 나타났다. 누군가 기침을 하면 타액 속 바이러스가 분사되는 모습이 보였다.

나의 콧구멍이 블랙홀처럼 그것을 빨아들이거나 손에 묻은 바이러스가 입에 들어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모르는 사람이 기침을 하면 슬며시 자리를 피했고 아는 사람일 경우 노심초사하며 자리를 뜰 기회를 엿봤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그런 노파심이 폭발했다.

내 앞에 선 남성이 재채기가 나오는 대로 허리를 구부리고 입을 벌렸던 것이다. 무언가로 입을 가리거나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정면에 앉아있는 내게 타액이 이슬비처럼 쏟아졌다.

이현미 사회부 기자
그 순간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지난 7월 신생아실 결핵 감염 사태가 발생한 서울 모네여성병원 결핵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올바른 기침 사례를 시연했다.

정 전 본부장은 옷소매 위쪽(팔꿈치 안쪽)에 입을 밀착하고 기침하는 흉내를 냈다. 타액이 옷소매에만 입모양대로 찍힐 것 같은 자세였다. 그는 “‘기침 에티켓’은 수많은 호흡기 질환의 감염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내 앞에 선 지하철 남성의 사방에는 승객이 빼곡히 서 있었다. 고개를 돌려 타인을 피할 공간이 없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면 손바닥에 묻은 침이 손잡이, 문짝 등에 옮겨질 터였다. 정 전 본부장의 시연이 해답으로 보였다.

일부러 나를 향해 입을 쫙쫙 벌리는 건 아닐 테지만 야속하고 불쾌하게 느껴졌다. ‘감기 걸리면 안 되는데, 애한테 옮기면 안 되는데.’ 감기 공포증이 고개를 들며 그의 입에 마스크를 살포시 씌어주고 싶었다.

나 역시 그간 올바른 기침법을 지키지 못했다. 사무실이나 집에서 빈 공간을 향해 에이취- 하며 시원하게 기침을 해댔다. 나의 타액이 빛의 속도로 누군가에게 퍼질지도 모른다는 찜찜함을 느끼면서도 쉽사리 습관을 바꾸지 못했다. 지하철에서 낯선 남성의 타액 분사를 당한 이후로는 옷소매 위쪽에 입을 대려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많은 국민이 지키게 된 ‘차례로 줄서기’처럼 ‘기침 에티켓’도 국민의 생활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

이현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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