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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금단의 사랑’… 고전 발레 틀 벗은 파격무대

입력 : 2017-10-29 21:10:22 수정 : 2017-10-29 2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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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신작 ‘안나 카레니나’ / 평창 문화올림픽 프로그램 일환으로 제작 / 클래식·모던 다 녹여 / 우아하면서 관능적… 의상·음악도 완벽 조화
“방금 장면은 관객이 보며 ‘헉’ 할 거예요. 고전 발레를 훌쩍 벗어났으니까요. 영화에 가깝죠. 자신을 다 비우고 감정적으로 완전히 빠져드세요. 그래야 관객도 여러분과 이어질 수 있어요.”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 발레 ‘안나 카레니나’의 안무가 크리스티안 슈푹이 무용수들에게 당부한다. 연습이 시작되자,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리회와 드미솔리스트 박종석이 환희에 찬 듯 뛰어나온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선율이 격렬하게 흘러간다.

박종석이 김리회의 목덜미에, 팔에 연신 숨가쁘게 입술을 댄다. 곧이어 두 몸이 포개진다. 기쁨도 잠시, 현대음악가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의 음악이 적군처럼 침범하고 김리회의 표정이 돌연 어두워진다. 불안한 듯 요동치는 불협화음 사이로 트럼펫의 외침이 삐져나온다. 뒤로 물러난 김리회가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발레 ‘안나 카레니나’ 중 ‘섹스 파드되’ 대목이다.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에서 10대에 결혼해 아들을 둔 안나는 뒤늦게 운명적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파멸한다. 이 2인무는 안나가 연인과 밤을 보내다 가족이 떠올라 멈칫하는 장면이다. 김리회가 안나, 박종석이 연인인 브론스키로 분했다. 고전 발레와 달리 육체적 사랑도 드러내는 점이 이색적이다.

국립발레단이 라이선스 신작 ‘안나 카레니나’를 선보인다. 11월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이 작품은 스위스 취리히발레단 예술감독인 슈푹이 안무해 2014년 초연했다. 고전부터 네오모던, 모던까지 다양한 발레 양식을 녹였다. 초연 당시 안무뿐 아니라 무대, 영상, 의상까지 뛰어나다고 호평받았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무용수 김리회·이재우가 ‘안나 카레니나’를 연습하고 있다.
국립발레단 제공
슈푹은 1200쪽가량인 원작을 발레로 만든 데 대해 “원작의 어떤 부분을 선택해 무대에 담을지가 관건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 여성이 열정과 감정에 휩쓸려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과정이 매력적”이라며 “안나는 남편 곁에서 안정적으로 살기보다 모든 것을 희생하며 금단의 사랑에 뛰어들지만 19세기 러시아에서 사랑을 실현할 방법이 없었기에 보는 이로선 연민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랑뿐 아니라 19세기 러시아를 세밀하게 그렸다”며 “러시아 상류사회를 군무로 표현하려 했고, 안나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의 사랑도 부각시켰다”고 말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역시 “군무가 굉장히 독특하고 보고 난 후 머리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슈푹이 특히 초점을 맞춘 건 이야기와 감정의 흐름이다. 연습에서도 ‘우리는 발레가 아니라 연극·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수석무용수 한나래가 목덜미에 브론스키의 숨결을 느끼는 장면에서 슈푹은 팔을 배부터 끌어올리면서 “목이 아니라 몸 안에서 전율이 이는 듯 표현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브론스키가 안나에게 다가갈 때도 일일이 걸음걸이를 지적하며 “‘널 원해, 널 좋아해’라고 보여주라”고 힘줘 말했다. 무도회에서 재회한 두 남녀가 사랑을 확인하기 직전의 짧은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안나가 브론스키를 돌아봤을 때 갈등이 느껴지게 하세요. ‘오, 저리 아름다울 수가’ 하는 동시에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게 보여야 해요.”

슈푹은 이 작품을 위해 흔히 쓰는 차이콥스키 대신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골랐다. 낭만적이고 묵직한 러시아의 정서를 자아내기 위해서다. 드라마틱한 부분에는 루토스와프스키의 현대 음악을 썼다. 안나에는 김리회 외에 수석무용수 박슬기와 솔리스트 한나래를 캐스팅했다. 연인 브론스키는 박종석과 수석무용수 이재우, 솔리스트 김기완이 나눠 맡는다.

이 작품은 내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문화올림픽 프로그램 중 하나로 특별 제작됐다. 예산은 20억원이다. 일부에서는 한국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러시아 소재의 라이선스 발레를 올리는 데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강수진 단장은 “평창올림픽은 세계적 축제이기도 해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했다”며 “이 작품으로 우리 발레 수준이 세계적임을 보이고, 아울러서 한국화된 발레도 어메이징함을 알리기 위해 창작발레 ‘허난설헌’을 내년 2월 강릉에서 공연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나 카레니나’는 춤뿐 아니라 의상, 음악 등 여러 부분이 조화롭게 아름답다”며 “발레를 잘 모르는 관객도 한쪽이 마음에 안 들어도 다른 요소를 통해 눈으로든 귀로든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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