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밸푸어는 밸푸어요 맥마흔은 맥마흔이로다” 1차 대전 중인 1917년 11월2일 영국이 “유대인들의 고향인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의 설립을 후원하겠다”고 발표한 밸푸어 선언은 얼핏 정감적이었다. ‘고향’에 나라를 세운다니….

이 밸푸어 선언은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아서 밸푸어(Arthur Balfour)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그 내면은 정감적이기보다는 살벌한 것이었다. 영국은 이에 앞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에게도 독립국가의 건설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이집트 주재 고등판무관 헨리 맥마흔이 1915년 1월부터 1916년 3월까지 아랍의 정치지도자 알리 빈 후세인과 10여차례에 걸쳐 전시외교정책과 관련된 서한을 주고받은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맥마흔 서한’이나 ‘맥마흔 선언’으로 알려진 이 서한은 당시 독일 측인 오스만 제국의 치하에 있던 아랍주민들이 영국 측에 가담하면 전후에 독립국가 건설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만도 아니었다. 영국은 프랑스와 오스만 제국 치하 아랍지역을 분할키로 한 ‘사이크스-피코 비밀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것은 영국이 이라크와 요르단을, 프랑스가 시리아와 레바논을 지배하고, 러시아에게도 오스만 제국 동부 지방을 주는 것을 내용으로 했다.

영국은 그런 마당에 왜 밸푸어 선언을 했을까. 당시 전비에 쪼들린 영국은 막강한 국제 유대계 금융재벌인 로스차일드가의 대표 격인 월터 로스차일드 경에게 서한 형식으로 밸푸어 선언을 약속했던 것이다. 미국의 유대인 세력을 이용해 미국의 보다 적극적인 참전을 유도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영국의 이런 2중 외교는 머지않아서 들통 나 비난을 받았으나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대국(영국)이 아니라 작은 나라들의 몫이었다.

당시만 해도 세계에 군림하다시피 한 초강대국인 영국은 결과적으로 “밸푸어는 밸푸어요, 맥마흔은 맥마흔이로다”식의 선문답 같은 표정만 지으면 그만이었던 셈이다.

양평(언론인)

△1961년 10월30일 소련, 인류 역사상 최강의 무기(수소탄)인 차르 봄바 실험

△1517년 10월31일 마르틴 루터, 교회를 비판한 95개 조항을 발표

△1945년 11월1일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창간

△1917년 11월2일 영국,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설립 약속한 밸푸어 선언 발표

△1901년 11월3일 프랑스 작가이자 정치가 앙드레 말로 탄생

△1956년 11월4일 헝가리 혁명, 소련군의 부다페스트 점령으로 좌절

△1916년 11월5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중력과 관련해 일반상대성이론 발표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