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데스크의눈] 선후 뒤바뀐 보수 대통합 논의

관련이슈 데스크의 눈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7-10-31 21:29:55 수정 : 2017-10-31 21:29:5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자유한국당·바른정당 통합파는
통합이 보수 재건 첩경인양 얘기
분열은 몰락의 원인이 아닌 현상
재건하려면 궤멸 원인 치유해야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미국의 워런 버핏은 자신과 같은 거대 갑부(super-rich)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려 재정적자 해소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버핏이 수년 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요지는 대체로 이렇다.

박창억 정치부장
“2010년 나는 과세소득 대상의 17.4%를 세금으로 냈다. 우리 사무실 직원 20명의 평균 소득세율은 36%였다. 나처럼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보다 직장인(근로소득자)들은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다. 나의 부자 친구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국가가 돈 벌 기회를 준 데 대해 고마워한다. 세금을 더 내란 소리에 개의치 않는다. 그동안 나와 부자 친구들은 충분한 보살핌을 받았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적 인물인 버핏의 증세 주장은 우리나라 보수 진영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버핏이 진보적이거나 박애주의자여서 자신이 세금을 더 내겠다고 했을까. 버핏은 현 자본주의 체제에 가장 잘 적응한 인물로, 그 질서에서 큰 수혜를 보고 있다고 고마워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질서가 유지되려면 그 사회 구성원 사이에 현 질서가 그런대로 괜찮다는 믿음이 공유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 질서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이면 결국은 혁명과 같은 급격한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도 1년 전 촛불시위로 불리는 격변을 겪었다. 촛불시위는 단순히 박근혜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당시까지 9년 동안 나라를 운영한 무능하고 부도덕한 보수세력에 대한 단죄로 보는 게 맞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촉발인(觸發因)’이었을 뿐이고, 근인(根因)은 형편없이 망가진 보수에 대해 누적된 분노였다. 날로 심해지는 양극화, 곤두박질친 경제, 치솟는 실업률, 안보 위기에 보수는 둔감하고 무기력했고 완고했다.

촛불시위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통령선거로 이어졌다. 보수세력은 철저히 궤멸했고, 그 와중에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정당은 분열됐다. 대선 패배 후 한국당은 보수의 ‘적통’을 자임하며 환골탈태의 각오를 수없이 밝혔지만,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혁신에 반드시 필요한 게 반성, 인적쇄신, 노선변화 세 가지인데, 이 중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즈음에는 ‘보수대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논의가 한창이다. 한국당의 행보가 얼마나 국민들 의식과 괴리가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보수대통합 논의다. ‘통합파’들은 보수정당 통합이 보수 재건의 첩경인 양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분열은 보수 몰락의 원인이 아니다. 보수가 붕괴하며 드러난 한 현상일 뿐이다. 보수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궤멸의 원인부터 치유해야 한다.

현재 두 보수 정당의 통합 논의가 전혀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국민 10명 가운데 4명은 어떤 정당의 통합에도 반대한다는 게 지난달 26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10월 24, 25일 조사,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이 바람직하다는 답변은 17.1%에 불과했다.

지금 보수에 가장 시급한 것은 혁신을 통해 국민들에게 보수의 가치가 우리 공동체의 질서로 손색없다는 믿음을 다시 주는 일이다. 버핏의 자발적 납세 의지 못지않게 영국 보수당의 변신도 한국 보수정당에는 큰 교훈을 줄 것이다. 17세기 왕권을 옹호하고 귀족을 대표했던 보수당은 끊임없이 사회변화에 적응해 중도적 정책을 수용했고, 노동자와의 거리를 좁혔다. 급기야 신임 보수당수이자 총리인 테리사 메이는 경선 유세에서 “내가 이끄는 보수당은 완전히, 전적으로 노동자들 편에 설 것”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는가. 자신이 세금을 더 내겠다는 버핏의 마음가짐, 노동자 정당을 선언한 메이 총리의 인식전환이 지금 한국의 보수정당에 가장 필요한 것이다.

분배, 성장, 안보 분야에서 필요하다면 진보, 중도 진영의 전략을 끌어다 쓰고 진보를 뛰어넘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보수 두 정당이 합치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흔들리는 조직은 추스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떠나간 민심을 되돌릴 수는 없다. 자신들이 환골탈태하지 않고 현 집권 진보진영이 헛발질하기만을 기다리다면 보수의 암흑기는 예상보다 훨씬 더 길어질 것이다.

박창억 정치부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