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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일상의 쉼표… 글씨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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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04 06:00:00 수정 : 2017-11-0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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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래피' 열풍… SNS에 퍼지는 ‘아날로그 감성’ / 정성 가득 담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 / 힐링 손글씨 써서 게재 유행처럼 번져…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취미로 인기 / 디자인 업계 ‘블루칩’ 급성장 / 간판·일상용품 등 생활곳곳 자리잡아… 영화·드라마·출판업계서 활약도 눈길 / 미술계 어엿한 예술분야로 인정 추세
2년 전 처음 붓을 잡은 주부 이현주(35)씨는 어느덧 주변으로부터 ‘작가’ 소리를 듣는 실력자가 됐다. “부업으로 쏠쏠하다”는 풍문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후 손글씨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차곡차곡 쌓은 글씨로 가득하다. 최근에는 가게를 창업하는 한 지인에게서 간판 글귀 의뢰도 들어왔다. 책 출판을 목표로 하는 그에게 캘리그래피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원동력”이 됐다.

지난 추석 직접 쓴 손글씨를 친구들에게 선물한 직장인 정모(43)씨도 비록 전문가만큼 뛰어난 솜씨는 아니었지만 선물을 받은 친구들의 반응에 어깨가 으쓱했다.

정성이 담긴 손글씨가 현대인의 감성을 적시고 있다. 과거 ‘고리타분’의 대명사로 치부되던 붓글씨는 어느 샌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즐기는 취미가 됐다. 거리의 간판을 비롯해 일상용품 등 생활 곳곳에 캘리그래피가 자리 잡았고 주류 미술계에서도 당당히 인정받는 분위기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한 아날로그에 대한 욕구는 캘리그래피가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는 이유로 꼽힌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디자인 학원에서 직장인 수강생들이 강사의 지도에 따라 정성스레 붓글씨를 쓰고 있다. 글씨는 삐뚤빼뚤하지만 표정만큼은 진지하다.
이재문 기자
◆“글씨가 돈이 된다” 2000년대 급성장

3일 미술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캘리그래피는 1990년대 후반 전통서예를 전공한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그들만의 세계’로 치부되던 기존 전통서예를 탈피해 대중화, 상업화하려는 시도가 캘리그래피라는 장르가 만들어진 계기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글서예가 존재했지만 지금처럼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형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언론에서도 ‘아름다운 글씨’란 의미인 ‘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서예(書藝)’의 영어식 표현으로 쓰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중반 “돈이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디자인 업계의 ‘블루칩’으로 급성장, 하나의 디자인 장르로 자리 잡게 된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 출판업계에서 캘리그래피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어디서 본 듯한 글꼴에서 벗어나 작품의 개성을 살리는 ‘오리지널’ 글씨체들이 속속 등장했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 ‘태극기 휘날리며’(2003), ‘웰컴 투 동막골’(2005), 소설 ‘봉순이 언니’(2004) 등이 대표적이다. 캘리그래피 작가가 드물었던 이 시기 영화나 드라마 제목 한 줄이 비싸게는 1000만원 선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두산주류(현 롯데주류)가 내놓은 소주 ‘처음처럼’은 캘리그래피 업계에서 손꼽히는 히트작이다. 고 신영복 교수의 서화 에세이 제목인 ‘처음처럼’을 전면에 내세워 소주에 익숙지 않은 젊은이들을 공략, 업계의 절대강자로 평가되던 ‘참이슬’의 아성을 위협했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당시 기획단계부터 소비자들에게 정감 있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핵심이 손글씨라고 판단했는데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다”고 회고했다.

‘캘리그래피’는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널리 사용되면서 각광받았고 이후 디자인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영화포털
◆‘SNS 시대’의 감성을 건드리다

‘172만8000건.’

3일 현재 인스타그램에 ‘#캘리그래피’로 태그된 이 같은 게시글의 수에서 볼 수 있듯 캘리그래피는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 이후 극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전문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직접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감성글’을 써서 SNS에 올리는 게 유행처럼 번지면서 ‘캘리그래피’란 단어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에 등록된 캘리그래피 관련 단행본 160권 중 145권(90.6%)이 2010년 이후 출판된 것들이다.

캘리그래피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모은 시기는 공교롭게도 ‘힐링’이란 단어가 유행한 시점과 일치한다. 현대사회의 피로감이 사회 전방위적으로 나타나던 때에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손글씨가 디지털로 둘러싸인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광호 캘리그래피 작가는 “연필과 편지를 키보드와 이메일이 대체한 이 시대에 ‘직접 쓴 글을 쓴다’는 것은 감성과 예술적 욕구 충족 등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전미영 서울대 교수(소비자트렌드)는 “말 그대로 ‘수제’인 캘리그래피는 기계적이고 반듯한 것에 질린 현대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SNS를 통해 남에게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청년세대의 욕구와도 절묘하게 맞물렸다는 시각도 있다,

◆미술계에서도 인정… ‘서예 붐’ 기대도

상업적 성격이 두드러진 탓에 주류 미술계로부터 외면받던 캘리그래피도 이제는 어엿한 예술 분야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2013년부터 초·중·고교 미술 교과서에 캘리그래피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고 국내 최대 규모의 신인미술작가 등용문으로 알려진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도 수년 전부터 캘리그래피를 서예부문으로 접수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캘리그래피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면서도 현대인이 요구하는 감성이 절묘하게 섞여 있는 등 예술적 가치도 충분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다.

서예계에서는 내심 캘리그래피의 인기를 지렛대 삼아 대중에게 외면받던 서예의 ‘제2의 부흥’을 기대하기도 한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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