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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중개업' 전락한 아이돌봄 사업…"여가부, 근로자성 인정 못 받도록 지침 변경"

입력 : 2017-11-05 20:31:27 수정 : 2017-11-05 20: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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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지침 변경…관리기능 축소 / 공공서 선발·양성해 서비스 불구 / "근로자성 부인 못해" 유권해석에 / 교육·파견 관리서 연계기관 변질 / 여성인력 처우개선 정반대 조치 / "이용자·돌보미 연계 콜센터 불과" / 센터장들 "근로자 인정해야" 지적
“여성가족부는 아이돌보미의 근로자성 문제에 뒷짐을 지고 있던 게 아닙니다. 2013년 아이돌보미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고용노동부의 유권해석이 나온 이후 고용부가 근로자로 본 근거를 위탁기관에 내려보내는 지침에서 하나둘씩 ‘지웠습니다’. 아이돌봄 사업을 하는 건강가정지원센터(이하 센터)는 이제 이용자와 돌보미를 연계해주는 ‘콜센터’에 불과해요.”

아이돌봄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한 센터장의 지적이다.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아이돌봄 사업은 공공에서 돌보미를 선발·양성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개인이 알아서 ‘이모님’을 구해야 하는 부담과 위험을 국가가 덜어주기 위해 도입됐다. 민간의 ‘베이비시터’를 돌보미로 양성해 ‘국가 책임’ 형태로 제공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여가부의 지침 변경으로 공공의 관리 역할은 사라지고 이제는 신청이 들어오면 위탁기관에서 돌보미를 가정에 보내주는 연계 역할만 남게 됐다.

◆여가부, 돌보미 센터 관리 역할 지워

5일 여성가족부의 ‘2017년 아이돌봄 지원사업 안내’를 보면 여가부는 위탁사업을 수행하는 센터의 역할을 아이돌보미를 모집·등록해 이용가정에 보내주는 ‘연계 지원 기관’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2013년까지만 해도 센터는 돌보미를 교육·파견하고 ‘관리’하는 곳이었다. 2011년 지침을 보면 돌보미는 서비스 시작 전과 후에 기관 담당자에게 보고하고, 시간별 활동 내역과 아동의 발달·특이사항을 기록한 활동일지를 기관에 제출했다. 여가부는 센터에 ‘활동일지 점검을 통해 활동사항과 서비스 질을 관리’하도록 명시했다. 센터와 돌보미의 이러한 업무 관계는 2013년 고용부가 “아이돌보미의 근로자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핵심 근거였다.

하지만 2017년 지침에서 센터의 이러한 관리 역할은 사라졌다. 여전히 활동일지를 작성하고 있는 센터도 있지만 기존에 했던 업무를 돌보미에게 권고하는 것일 뿐 의무사항은 아니다. 양질의 여성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힘써야 할 주무부처에서 돌보미들이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보기는커녕 여성 인력을 쉽고 저렴하게 쓰는 방향으로 조치한 것이다. 센터장들은 “여가부가 지침을 변경하기 시작한 건 돌보미의 근로자성 문제가 떠오르면서부터였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돌보미와 근무 형태가 거의 동일한 재가요양보호사들은 보건복지부에서 근로자로 인정해 주휴수당, 연장근로수당 등을 반영한 사업비를 위탁기관에 주고 있다. 여가부는 소송 패소 때 지급해야 할 임금 채권을 1010억원으로 추계했다.

처우가 열악한 일자리의 피해는 이용자들도 보고 있다. 당초 취지와 달리 소득수준이 낮은 가구의 이용이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가부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남인순(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다형’의 시간제 돌봄 이용가구는 2012년 2851가구에서 2016년 5238가구로 83.7% 증가한 반면, 가형은 같은 기간 2만1476가구에서 2만92가구로 6.4% 줄었다. 아이돌봄 사업은 소득에 따라 정부에서 비용을 지원해주는 일종의 ‘바우처 사업’으로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가형’은 비용의 70∼75%를 국고로 보조해준다.

이에 대해 한 센터장은 “가형은 주거환경이 열악한 가정이 많아 여름철 냉방과 겨울철 난방이 안 돼 돌보미들이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돌보미에게 마땅한 대가를 지급하고 소속 기관의 관리 기능을 살려 조율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센터의 기능이 연계 기관으로 축소되면서 조율이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활동일지 등 기록물은 센터에서 돌보미의 근무 상황을 파악해 보수를 지급하는 기준이었을 뿐더러 돌봄 서비스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히는 근거로도 쓰였다. 하지만 지침상 이런 업무가 사라지면서 이용가정과 돌보미 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참고할 수 있는 공식 기록을 작성할 의무도 사라지게 됐다.

◆아이돌봄 센터 “사업권 반납하겠다”…현장 혼란 극심

현재 센터와 아이돌보미들은 근로자성 인정 여부를 놓고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난 8월 광주서구센터의 상고 취하로 돌보미들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판결은 아이돌보미의 단체교섭권 등 노동 3권에 대한 것으로 임금, 수당, 퇴직금, 4대보험 가입 등 처우와 관련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은 여전히 1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센터와 돌보미 간 소송이지만 사실은 센터에 예산과 지침을 내리는 여가부와 돌보미의 싸움이다. 돌보미와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는 당사자는 센터지만 돌보미 처우·지위 변경과 관련해 센터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송은 계약 당사자인 센터가 치르고 있다. 여가부에서 연차수당 등 돌보미들의 요구를 반영한 사업비를 주지 않는 한 아무런 결정도 할 수 없는 위탁기관에서 대리전을 뛰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의 관리·감독 소홀이 아닌 제도의 설계와 관련된 문제인 만큼 소송 비용도 국가가 지급했다.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 소송을 치른 광주서구센터는 광주시로부터 보조금을 받았고 시에서 3심 비용 집행을 중단하면서 상고를 취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센터장은 “센터는 정부의 총알받이일 뿐 돌보미들의 진짜 사용주는 소송 비용을 낸 정부”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 사업의 최종 책임기관인 여가부가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현장의 혼란은 극대화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실사용자’인 정부는 사법부만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임금, 처우 등에 대한 결정권이 없는 센터와 돌보미가 단체교섭 등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여가부의 주먹구구식 처우 개선과 고용부의 오락가락한 입장도 현장의 혼란을 부추겼다. 2013년 고용부의 유권해석이 나온 이후 아이돌보미는 4대 보험 가입 혜택과 퇴직금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여가부는 처우 개선 차원에서 지급하고 있을 뿐 근로자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고용부 광주지방고용노동청도 2015년 기존 입장을 뒤집고 아이돌보미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고용부는 아이돌보미가 4대 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이유로 상시 근로자로 간주해 센터에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상시 근로자를 채용한 기관에서는 일정 비율 이상의 장애인을 채용해야 하고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고용부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해석해놓고 4대 보험을 낸다는 이유로 부담금을 부과하고, 여가부는 처우 개선 차원일뿐 근로자로 본 건 아니라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 센터장은 “아이돌봄 사업과 관련해 정부가 설계를 잘못해놓고 그 부담과 혼선은 전부 위탁기관에 떠넘기고 있다”며 “일부 센터들은 향후 사업권을 반납하기로 결의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가부가 아이돌보미를 근로자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사업비만 주면 센터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해 돌보미와 갈등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아이돌봄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정부에서 센터를 사용자, 돌보미를 근로자로 인정해 마땅한 권한과 의무, 예산을 주거나 국가가 직접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해 운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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