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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금융감독, 소통이 능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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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05 21:18:19 수정 : 2017-11-05 21: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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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금융사 ‘물검사’ 논란 속
정체성·직원 사기 잃어가는 터에
컨설팅식 검사로 관행 개선 추진
현실 직시한다면 방향 반대 돼야
생명보험사들은 결국 백기투항 했다. 금융감독원의 뚝심 앞에 무릎 꿇었다. 약관대로 자살보험금을 모두 지급키로 했다. 자살도 재해사망으로 인정해 일반사망보험금의 두 배 이상을 주도록 한 약속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지난 3월의 일이다. 항복까지는 길고 긴 저항과 반격이 있었다. 금감원의 승리는 쉽게 이뤄진 게 아니다. ‘전투’에 나선 이들은 ‘협박’을 받았다. ‘전사’의 약점을 잡아 공세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였다.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좋은 게 좋다’ 식으로는 규율하기 어렵다. 시장 신뢰는 공정한 질서를 유지하려는 누군가의 의지와 뚝심 없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워치독(감시견)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다. 금감원이 물렁하게 대응했다면 자살보험금 전쟁의 승자는 시장이었을 것이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금감원이 지금 두 눈 부릅뜨고 제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살보험금 사례만으로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안에서는 ‘물검사’를 걱정하는 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매뉴얼대로 이건 구비됐는지, 저건 설치돼 있는지 점검하는 수준이지 검사라고 할 수 없다.” “형식적 검사로 금융사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 금감원은 워치독으로서 금융시장의 위험을 먼저 감지하고 경고음을 내는 게 주임무이고 바로 그 위험을 감지하는 일이 검사인데, 내부에서 그 ‘본질적 업무’를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금융당국 수뇌가 강조한 ‘시장친화적 검사’의 결과다.

수뇌가 잡은 흐름을 아래서 개인의 의지로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어떤 이는 “언젠가부터 건전성 검사를 나가 문제점을 찾아 지적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풍토가 생겼다”고 말했다. “뭐라도 지적하면 마치 금융시장에 걸림돌이 되는 양 주저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거스르려면 불이익을 각오해야 한다. 검사를 ‘꼼꼼히’ ‘열심히’ 한 사람은 다음 인사에서 불이익을 확인하게 된다. 농반진반 “열심히 일하면 인사에서 물먹는다”는 역설이 통하는 게 요즘 금감원 세태다.

이런 마당에 금감원이 금융사 임직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불필요한 검사를 없애는 내용의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 민간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최흥식 금감원장 취임 이후다. 최 원장은 취임사에서 ‘소통’을 강조했다. “금융회사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그들과 눈을 맞추고 교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이 네덜란드 금융감독 스타일에 눈길을 돌리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네덜란드식은 ‘설득’과 ‘소통’으로 금융사를 감독하는 게 특징이다. 직접 규제를 하기보다 금융사가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라고 한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네덜란드식이 모범이란 얘기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감원이 검토하는 “금융사 스스로 사고를 방지할 수 있게 돕는 컨설팅식 검사 관행”과 네덜란드식은 통하는 게 사실이다.

만에 하나, 네덜란드식을 도입하려는 거라면 난센스다. 토양이 너무 다르다. 네덜란드는 수백년에 걸쳐 축적한 ‘금융에 대한 믿음’이 있지만 한국의 금융 신뢰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네덜란드엔 저지대에 둑을 세우고 간척지를 만들며 쌓은 ‘자율과 협력’의 문화도 있다. 이런 문화가 빛을 발한 것이 1970년대 ‘토털사커’다. 공격과 수비의 역할 분담 없이 상황에 맞게 공간을 지배하는 것이 요체인데, 이를 벤치마킹한 나라 중 재미본 나라는 별로 없다. ‘자율과 협력’ 문화까지 수입할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물검사’ 논란 속에 정체성과 사기를 잃어가는 터에 이런 식의 검사·감독 관행 개선이 맞는지 의문이다. 금감원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방향은 반대가 돼야 한다. 눈길을 돌려 미국 여성변호사 ‘브룩슬리 본’을 탐구해보는 건 어떤가. 금융위기 전 미국 정부는 파생상품 거래 규제를 대폭 완화했는데, 유일하게 경고의 목소리를 낸 인물이 당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이던 본이다. 본은 의회청문회에서 “도대체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이유가 뭐냐”는 한 상원의원의 질문에 단호하게 답했다. “평범한 미국인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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