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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미국의 진주만 기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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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05 21:19:36 수정 : 2017-11-05 21: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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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진주만에는 전함 애리조나호가 수장돼 있다. 1941년 일본의 공격을 받아 침몰하면서 장교와 승조원 등 1177명이 사망했다. 길이 185m의 전함이 가라앉은 바다 위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흰색 기념관이 설치돼 있다.

애리조나호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억의 저장소이다. 미국 정부는 애리조나호 생존자들이 사망할 경우 동료들과 함께 안식할 수 있도록 전함에 유골을 봉안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1차 대전 등 다른 시기에 애리조나호를 타고 전투를 치렀던 해군 장병들에게는 화장 유골을 인근에 뿌릴 수 있게 한다. 애리조나호는 침몰한 뒤 전투수행 기능을 상실했지만 여전히 ‘취역 중’이다. 성조기를 게양할 권한을 영원히 부여받은 것이다. 국립공원공단에서 관리하지만 미 해군이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기념관에 가보면 두꺼운 유리바닥 밑으로 연료용 기름이 떠오르는 것이 보인다. 미국은 불의의 습격을 당해 침몰한 전함을 치우지 않고 “일본의 침략을 잊지 말자”며 기억 저장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다. 그는 트위터에 “진주만을 기억하라. 애리조나호를 기억하라”는 글을 올렸다. 76년 전 습격당한 현장에서 일본이 보란 듯이 경고했다.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을 향해 헌화하고 묵념도 했다. 외교전에 뛰어들면서 군 통수권자의 자세를 가다듬은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이 토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쩔쩔맨다. 일본 총리가 나서서 트럼프의 딸 이방카를 극진히 대접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우리는 망각이 습관적이다. 6·25전쟁이 그렇다. 한쪽에서는 6·25전쟁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국전이라고 부른다. 서로를 향한 삿대질이 기승을 부리면서 누가 침략자인지조차 헷갈리게 한다. 영어권에서는 6·25를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 ‘알려지지 않은 전쟁(The Unknown War)’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교정 시도조차 없었다. 가장 아픈 흔적이 비무장지대(DMZ)인데도 상대를 자극한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과 우리의 다른 점이다.

한용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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