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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공직 마다한 사람들의 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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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06 23:32:22 수정 : 2017-11-06 23: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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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가 정략에 춤춰도 / 이만큼이나마 유지되는 것은 / 부족함 깨닫고 부끄러워하며 / 자리 고사한 사람들 덕분 문재인정부에서 인사 검증에 걸려 중도 하차한 고위 공직자는 7명에 이른다. 이명박·박근혜정부와 비교해도 적지 않은 숫자다.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뒤 지금까지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한 사람은 40명 가까이 된다. 청와대 내부 검증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부지기수다. 고위 공직자 물망에 오를 정도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인사들이 자체 조사에서 탈락하거나 청문회 문턱에서 주저앉은 것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인사 검증이 깐깐해지면서 공직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가 어려워졌지만 인물을 찾기도 그만큼 힘들어졌다. 창조과학 논란 등에 휩싸여 낙마한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만 해도 청와대가 27번째로 검토한 후보자였다고 한다. 홍종학 후보자로 결정하기 앞서 20명가량 검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돌고 돌아 결국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으로 정해진 것이다. 박·홍 두 사람을 뺀 나머지 인사 50명가량은 검증에서 떨어졌거나 자리를 거절했다는 뜻이다.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시작한 이후 청문대에 선 사람보다 서기를 사양한 사람이 훨씬 많다. 그들 중엔 삼고초려 아니라 육고초려 칠고초려를 받은 사람들도 있다. 큰 자리를 내어주겠다는 제의를,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 뜻을 마다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끝내 물러선 것은 본인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겐 억울할 것도 없다. 오히려 선뜻 공직을 맡겠다고 나서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 했을지 모른다.

인사청문회가 정략으로 춤춰도 이만큼이나마 유지되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의 자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던 덕분이기도 하다. 인사가 만사(萬事)가 되게 하려면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청문회에 나가도 떳떳할 만큼 자기관리에 힘쓰는 것이다. 인사청문회는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적재(適材)를 적소(適所)에 등용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몸과 마음을 바로잡는 자경(自警)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김기홍 논설위원
장관이 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을 보물 다루듯 해야 한다. ‘고위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를 받으면 ‘예’ ‘아니요’를 적기 전에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청문대에 설 자격이 있다. 그러지 않으면 청문대엔 자리 욕심만 가득한 함량미달 인사들로 붐비게 된다. 그중에 몇몇은 운이 좋아 청문회를 통과하기도 하지만 “여러 흠결이 있어 떳떳하기 어렵다”거나 “저도 불벼락을 맞을 사람이구나” 같은 입에 발린 소리를 하기 마련이다.

마이클 팰런 영국 국방장관은 15년 전 한 여성 언론인의 무릎에 여러 차례 손을 올려 놓은 사실이 드러나 옷을 벗었다. 피해 여성이 “성희롱 당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말했는데도 팰런은 “군을 대표하는 내가 군에 요구되는 높은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했다. 우리 같았으면 성추행을 인정하기는커녕 딱 잡아떼고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것이다. 장관직에 오르는 것도 어렵지만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고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은 더 어렵다. 팰런의 소행과는 비교도 안 될 잘못을 저지르고도 태연자약 자리를 지키는 고위직이 적지 않은 건 영국과 대한민국의 공직윤리 의식 수준 차이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보완할 필요는 있지만 그것이 인사 기준을 후퇴시키는 빌미가 돼서는 안 된다.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병역면탈을 관행으로 용인한다면 청문회를 열 필요도 없다. 인사 원칙을 세우는 근본 책임은 인사권자에게 있다. ‘내로남불’ 식의 고무줄 잣대를 내세우고 여당 당직자들에게 “정부기관 등으로의 파견근무를 희망하시는 분” 따위의 문자메시지나 보내면 담비 꼬리가 모자라 개 꼬리를 찾게 된다. 청와대 관계자가 홍종학 후보자의 자격 논란이 못마땅해 “여러분도 쓴 기사대로 살아야지”라고 말했대서 하는 말이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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