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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권위 비해 신뢰 없는 미쉐린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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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09 21:26:20 수정 : 2017-11-09 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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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홍콩으로 해외여행을 떠날 때 여행책이 필수품이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가볼 만한 식당은 어딘지 등을 알려면 사실상 전문가들이 쓴 여행책이 유일한 해답이었다. 책의 정보가 확실치 않더라도 믿을 건 책뿐이었다. 올해 10월 다시 홍콩을 찾았다. 15년이 지나선 짐을 꾸릴 때 여행책은 필요 없었다. 숙소 예약부터 맛집 검색 등 15년 전과 달리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됐다. 전문가들이 쓴 책보다 일반 여행객들이 올린 여행지 정보와 음식점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보면서 나에게 맞는 여행지를 수월하게 찾을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권위가 있다는 레스토랑 평가·안내서 미쉐린 가이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편을 발간했다. 한식당 라연과 가온이 미쉐린 3스타 식당으로 선정됐다. 2스타에는 정식당과 코지마 등 4곳이, 1스타 식당으로는 18곳이 뽑혔다.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 방법은 호텔 학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심사위원들이 음식점을 방문해 일반 손님처럼 식사 후 계산을 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이 같은 익명성이 미쉐린 가이드를 성공적으로 이끈다고 밝히고 있다.

이귀전 문화부 차장
하지만 미쉐린 가이드가 내세우는 인원, 국적, 성별조차 알 수 없는 익명의 전문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미쉐린 가이드가 선정한 식당 대부분이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꽤 유명한 식당들이다. 꼭 전문가들만 ‘좋은 곳’이라고 판단내릴 수 있는 숨겨진 식당이 아니다. 이미 그 식당에 대한 평가는 인터넷엔 수두룩하다.

더구나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를 보면 신뢰는 더 떨어진다. 서울에서 3스타를 받은 한 식당에 대해 ‘전통 한식을 현대적인 조리법으로 세련되게 표현해낸다. 시원한 남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이곳은 한국의 전통문양을 활용한 기품 있는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우아하고 편안한 식사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구비한 고급 식기와 백자를 형상화한 그릇은 레스토랑이 지향하는 또 다른 차원의 섬세함을 잘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별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맛은 보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지만, 레스토랑 안내서에서 가장 중요한 맛보다 그 시설이나 식기, 서비스 등 화려한 외형에만 평가가 쏠려 있는 셈이다.

지난해 발간한 서울편에서는 이미 폐점된 레스토랑을 소개하거나 테라스가 없는 레스토랑을 있는 것처럼 소개했다. 익명의 전문가가 직접 식당을 방문한다는 평가 방식이 얼마나 허술하게 운영됐는지 드러난 것이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정보의 비대칭이 심했던 과거라면 이런 안내서가 그나마 도움이 됐을 것이다. 100여년의 전통만 내세우는 안내서도 이제 변화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집단지성의 시대에 자신들이 선정한 전문가들의 설득력 없는 의견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권위주의적이다. 그나마 권위를 지키려면 신뢰가 쌓여야 하는데, 그 뿌리부터 그리 믿음이 안 간다. 오히려 많은 여행 전문 웹사이트들에 올라오는 일반인들의 정제되지 않은 ‘날것’ 같은 정보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이귀전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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