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최현태기자의 와인홀릭] 동유럽의 숨은 보석 ‘체코 와인’을 아십니까

관련이슈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 디지털기획

입력 : 2017-11-10 06:00:00 수정 : 2017-11-10 10:43:2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체코 최대 와인산지 모라비아로 떠나는 가을 와인여행 / 로마군 전파로 2세기부터 와인 빚은 유구한 역사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의 틴 성당
프라하 성비투스 대성당 전경
프라하 성비투스 성당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알폰스 무하의 작품이다.
'덴 베스 비나 야코 덴 베스 슬룬체(DEN BEZ VINA JE JAKO DEN BEZ SLUNCE)'

체코 프라하에서 자동차로 2시간40분을 달리면 동남부 모라비아(Moravia)에 도착한다. 이곳은 체코 와인의 96%가 생산되는 최대 와인산지다. 모라비아 남부 벨케 파블로비체(Velké Pavlovice)에 재미있는 마을이 하나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기자는 지난달 25일 이곳을 찾았다. 바로 ‘와인연방공화국’ 크라비 호라(KRAVÍ HORA)다. 주요 국가의 국기가 내걸린 대사관처럼 꾸민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골목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진 마을로 들어서니 이곳을 책임지는 ‘대통령’이자 루드빅 와이너리(Ludwig Winery)오너 스타니슬라프 노박(Stanislav Novák)씨가 취재진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와인이 없는 날은 햇살이 없는 날과 같다’는 글이 적힌 스타니슬라프 노박씨의 셀러
​와인연방공화국 크라비 호라(KRAVÍ HORA) ‘대통령’ 스타니슬라프 노박씨가 와인마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의 와인셀러를 들어서자 이런 체코어가 적힌 나무판이 걸려있다. ‘와인이 없는 날은 햇살이 없는 날과 같다’는 뜻이란다. 그만큼 모라비아 사람들에게 와인은 햇살처럼 중요하다. 크라비 호라 마을 건물들은 사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들이 보관되는 셀러로 관광객들은 문이 열린 곳이면 어디서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체코 최대 와인산지 모라비아 파블로프의 포도밭.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단풍 든 포도밭 입구에는 이 땅을 지켜 달라는 와인 생산자들의 염원을 담은 성모마리아 상을 닮은 동상이 서 있다.
보통 자기 집에 손님이 오면 커피나 차를 권하지만 모라비아 사람들은 “화이트 와인 마실래요? 레드 와인 마실래요?”하고 물어본단다. 모라비아에서는 집집마다 마당에 포도나무를 심어 와인을 직접 만들어 마실 정도로 이들에게 와인은 일상의 한 부분이다. 모라비아에서도 대표 산지 미쿨로프(Mikulov)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마을인 파블로프(Pavlov)로 가는 도로 양쪽에는 단풍으로 곱게 물든 포도밭이 끊임없이 펼쳐져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포도밭에는 ‘이 땅을 번영케 해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성모 마리아를 닮은 동상이 서 있다. 삶의 터전인 소중한 포도밭을 지켜달라는 간절한 염원에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체코 남동부 최대 와인산지 모라비아 위치. 왼쪽부터 즈노이모, 미쿨로프, 벨케 파블로비체, 슬로박코
체코는 한국인들에게 매우 인기있는 관광지다. 체코를 찾는 한국 관광객은 연간 평균 24만명정도인데 이미 올해 상반기에만 23만명이 다녀갔고 올해 약 40만명이 찾을 예정이라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코 사랑은 유별나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찾는 곳은 대부분 프라하여서 체코 와인은 아직 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더구나 체코하면 ‘필스너 우르켈’이 떠오를 정도로 맥주의 명성에 가려져 있다. 전세계 맥주의 90%를 차지하는 라거 계열 맥주를 대표하는 필스너의 고향이 바로 체코의 플젠(Plzen)이다. 실제 소비량도 큰 차이가 있다. 체코는 관광객을 포함해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이 143ℓ인데 와인 소비량은 20ℓ 수준에 머문다.

템플기사단 와이너리 전경
하지만 체코 와인의 ‘내공’은 맥주를 뛰어 넘는다. 로마군이 전파한 와인 양조의 역사가 무려 2세기 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기 때문이다. 체코 와인의 역사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와이너리가 세이코비체(Čejkovice)에 있는 템플기사단 와이너리(Templars Winery)다. 이 곳의 지하셀러는 13세기 초반 십자군 기사단이 만들었으니 800년이 넘었다. 템플 기사단은 종교 의식을 위해 와인이 필요했기에 그들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모두 와이너리를 세웠다. 이들은 프랑스에서 온 기사단이어서 와인 양조에 많은 노하우가 있었다고 한다. 이미 이때 프랑스 와인 양조 기술이 전파된 셈인데 기사단이 모라비아 와인의 품질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템플기사단 와이너리 와인들
템플 기사단은 전쟁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12∼13세기 유럽에 궁궐과 성을 700여개나 소유하고 환전소 개념의 유럽 첫 은행도 바로 이 기사단이 설립할 정도로 가장 강력한 수도좌로 성장했는데 결국 이는 비극을 불렀다. 템플 기사단에 큰 빚을 지고 있던 프랑스왕 필립2세는 돈을 갚지 못할 상황이 되자 1306년 기사단의 수장들을 모두 처형하고 이들을 강제 해산한다. 그날이 13일의 금요일이어서 불운을 상징하는 날짜가 이 사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1320년 체코 귀족 인드직 들립뻬가 이 와이너리를 소유했고 와인은 까를 4세 대관식에 사용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이후 1618~1648년 30년에 걸친 종교 전쟁으로 체코 귀족들의 재산이 몰수되는 소용돌이 속에 소유주는 예수회로 넘어갔고 예수회도 나중에 해체되면서 1936년 설립된 조합이 와이너리를 운영하게 된다. 하지만 체코의 공산화로 와이너리는 국유화됐고 1992년 프라의 봄을 맞아 다시 예전 조합의 품으로 와이너리가 돌아가면서 와인 생산의 르네상스도 찾아왔다. 현재 와인 농장주 360여명 운영하는 템플 기사단 와이너리는 포도밭 2100ha에서 연간 600만병을 생산하는 체코 최대의 와이너리로 성장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때문에 와인 병에 중세시대의 문장과 십자군을 상징하는 문양들이 담겨있다.

템플기사단 와이너리 로비에 있는 성인 키를 넘는 200ℓ 대형 와인 병.
템플기사단 와이너리를 방문하면 로비에 전시된 체코에서 가장 큰 200ℓ 와인병이 손님들을 맞는다. 성인의 키를 훌쩍 넘기는 엄청난 사이즈인데 특별한 기념일이나 행사때 이 병에 와인을 가득채워 많은 이들이 함께 와인을 즐기게 된다.

체코와인의 생산지는 프라하 인근의 보헤미아와 남부의 모라비아로 나뉘지만 대부분의 와인이 생산되는 모라비아가 가장 중요하다. 모라비아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즈노이모(Znojmo), 미쿨로프(Mikulov), 파블로프(Pavlov), 레드니체-발티체(Lednice-Valtice), 벨케 파블로비체(Velké Pavlovice) 등이다. 미쿨로프에서 차로 30∼40분 거리여서 이곳에 숙소를 정하고 둘러보면 된다. 체코는 생산와인의 60%가 화이트 와인이다. 보통 포도 재배의 한계를 북위 50도로 보는데 체코는 북위 49도에 있는 추운 지역이라 레드 품종이 자라기 쉽지 않다. 

팔라바 언덕
체코관광청 제공
팔라바를 비롯한 다양한 체코 와인들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 덕분에 뛰어난 화이트 와인이 생산되는데 토착품종인 팔라바(Palava)가 큰 주목을 받고있다. 포도 품종의 어머니로 불리며 게뷔르츠트라미너 등 다양한 클론 품종을 낳은 트라민과 독일에 주로 분포된 뮐러트루가우를 교배한 품종이다. 양귀비가 사랑한 과일 리치 등 풍부한 과일 향과 부드러운 산도가 매력적이다. 지역 이름인 팔라바를 본따 품종 이름을 지었는데 미쿨로프와 파블로프 사이에 있는 이곳은 팔라바 최대 생산지로 모라비아에서도 최고의 와인산지로 꼽힌다. 리슬링(Riesling)과 세이벨(Seibel)을 교배한 히베르날(Hibernal)도 체코에서 주로 볼수 있는 품종으로 스파이시한 향이 매력적이다. 또 리슬링, 소비뇽블랑, 샤도네이, 그뤼너벨트리너, 벨쉬리슬링, 피노그리, 피노블랑 등의 다양한 화이트 와인이 생산되는데 전반적으로 체코 화이트 와인들은 당도가 살짝 있어 와인 초보자들도 즐기기 좋다.

최근 국내에 수입된 브즈넥(Bzenec) 와이너리 리슬링
알폰스 무하 작품이 담긴 브즈넥(Bzenec) 와인
서늘한 기후이다보니 스파클링 와인 섹트(Sekt)도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지난해 체코와인협회 올해의 와이너리로 뽑힌 브즈넥(Bzenec) 와이너리는 체코에서 최초로 샴페인과 같은 전통 방식으로 스파클링 섹트를 생산한 곳으로 유명하다. 최근 수입사 신인터내셔널을 통해 리슬링 2종이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해 국내 소비자들도 체코 와인의 매력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미쿨로프에 와이너리가 설립된 1876년부터 섹트를 만들기 시작했을 정도로 체코 섹트의 대명사가 브즈넥이다. 이곳에서는 체코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 알폰스 무하의 작품을 레이블에 담은 와인들도 만날 수 있다. 

발티체 국립 와인살롱에서 자유롭게 시음을 즐기는 관광객들
발티체 국립와인살롱 쿨러에 적정 시음 온도로 보관된 화이트 와인들
모라비아에서는 다양한 체코 와인을 한곳에서 시음하고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미쿨로프에서 차로 15분정도 거리인 파블로프 팔라바 언덕에 있는 팔랍스카 갈레리에 빈 우 베누셰(Pálavská Galerie Vín U Venuše)에서는 18세기에 지어진 와인셀러에서 소믈리에들이 엄선한 와인 60종을 자유롭게 테이스팅하거나 구매할수 있고 와인바에서 간단한 스낵과 함께 와인을 즐길 수 있다. 45분동안 30개의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코스는 약 1만5000원, 90분은 약 1만8000원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발티체 국립 와인살롱(Valtice Wine Salon)의 150년된 지하셀러에는 체코 와인경진대회에서 100위안에 든 와인을 같은 방법으로 시음할 수 있다. 전체 길이1 km의 지하셀러는 1년 평균 온도가 12도로 유지돼 와인 보관의 최적의 공간이다. 

 
발티체 궁 전경
레드니체 궁 전경
레드니체 궁 내부의 화려한 모습.
주요 와인 산지는 체코 역사를 고스란이 간직한 곳이기도하다. 브레츨라프(Břeclav) 지역의 레드니체-발티체 궁은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가문이 소유했던 곳으로 현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특히 여름 별장으로 사용된 레드니체 궁은 ‘체코의 베르사이유 궁’으로 불릴 정도로 화려함을 자랑한다. 16세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처음 지어진 뒤 바로크와 고전주의 양식으로 수차례 개축을 거쳐 현재의 궁은 1846년에 네오 고딕양식으로 새로 지어졌다. 정교한 나무조각과 블루 컬러의 화려한 색상이 매혹적이며 드넓게 펼쳐친 영국식 낭만주의 정원에 서면 빼어난 풍경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미쿨로프 성에서는 길이가 6.2m, 지름이 5.2m에 10만1081ℓ를 저장할 수 있는 체코 최대의 오크통이 장관이다. 

강을 끼고 중세풍의 건물이 펼쳐진 즈노이모 풍경
비노 호르트 오너 지리 호르트(Jiri Hort)
또 1528년부터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의 왕정 도시였던 즈노이모는 디에(Dyje)강 주변에 중세 성벽으로 둘러싸인 교회들이 고풍스러운 도시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건축물과 예쁜 샵들이 있는 좁은 골목들은 그림같다. 즈노이모 언덕에서 서면 형형색색 단풍으로 물든 강 주변에 펼쳐진 중세시대 마을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즈노이모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는 비노 호르트(Vino Hort)로는 매력적인 로제와인과 샤도네이 품종 등으로 빚은 맛난 화이트 와인이 기분을 업시킨다. 
석회암 동굴 레스토랑 포드 코짐 흐라드켐의 연주자들
레스토랑 겸 와이너리 오너 솔라르직 부자

포드 코짐 흐라드켐의 대표 메뉴인 돼지 안심

다양한 체코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들
금강산도 식후경. 여행에서 현지의 맛난 음식은 빼놓을 수 없다. 미쿨로프 시내의 포드 코짐 흐라드켐(Pod Kozím Hrádkem)은 석회암 동굴을 그대로 살려 만든 전통 레스토랑 겸 와인셀러로 전통의상을 입은 연주자들이 금속현을 두드려 연주하는 피아노의 전신 침발(Cimbal) 연주와 함께 와인을 즐길 수 있다. 화이트 와인에 조린 양파 젤리를 돼지 안심에 곁들인 체코 전통 요리는 화이트 와인과 좋은 궁합을 이룬다. 이곳의 오너 솔라르직(Solarsik)씨는 와인 한잔에 흥이 나면 자신의 셀러로 데려가 모든 와인을 시음하게 해주며 입에 머금은 와인을 힘차게 밷어 불을 붙이는 ‘불쇼’도 보여준다. 

단풍으로 물든 포도밭 한가운에 있는 크라스나 호라 와이너리
수확이 끝난 10월말의 모라비아 포도밭은 형형색색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든다. 태양의 꼭대기라는 뜻을 지닌 손베르크(Sonberk) 와이너리에서는 넓은 창문을 통해 단풍 든 포도밭을 감상하며 체코 최고의 와인들을 테이스팅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와인 매거진 디캔터는 매년 전세계 와인을 심사하는데 손베르크 화이트 와인 팔라바 2015 빈티지는 올해 1만7000개 출품 와인중 34개만 뽑힌 ‘베스트 인 쇼’ 와인에 선정됐다. 아름다운 언덕이라는 뜻을 지닌 크라스나 호라(Krasna Hora) 와이너리는 건축상을 2차례받은 곳으로 와이너리가 포도밭 한가운데 있어서 단풍이 곱게 물든 풍경에 푹 빠지게 만든다.

손베르크(Sonberk) 와인들을 소개하는 다그마르 피아로바(Dagmar Fialova) 세일즈마케팅 디렉터
포도 수확을 마친 10월 초 모라비아 곳곳에서 풍성한 축제를 만날 수 있다. 발티체 축제에서는 민속 의상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벨케 카르로비체에서는 카를로브스키 미식축제(Karlovský Gastrofestival Velké Karlovice)가 열려 미슐랭 가이드 스타 레스토랑의 갈라 디너와 함께 다양한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모라비아(체코)=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