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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 얻은 인류 神이 되어가고 있다

입력 : 2017-11-11 03:00:00 수정 : 2017-11-1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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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유전자 찾아내고 편집까지 /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발견은 혁명 / 수많은 불치병 치료의 길 열어줘 / 생물 멸종시킬 수 있는 엄청난 능력 / 윤리적 문제 풀어야 할 숙제로
김홍표 지음/동아시아/2만원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김홍표 지음/동아시아/2만원


매년 전 세계 약 2억명의 사람은 모기가 매개하는 전염병인 말라리아에 감염된다. 모기의 체중은 성인 남성의 2800만분의 1에 불과하지만, 모기로 인한 사망자 수는 매년 70만명에 달한다. 이렇듯 모기는 세상 어느 동물보다 인간에게 위협적이다. 이런 모기를 멸종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암컷 모기의 DNA에는 정상이 아닐 때 불임이 되는 유전자가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모기 수정란에서 이 유전자를 망가뜨리면 모기는 불임이 된다. 이 모기와 교배해 생긴 자손 중 암컷은 모두 불임이 되기 때문에 알을 낳지 못하고, 수컷은 망가진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게 된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불임인 모기 개체수가 늘고, 결국 모기는 멸종에 이른다. SF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는 최근 영국 연구진이 설계한 실험이다.

신간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은 과학저술가인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의 저서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최신 연구 동향과 현대 유전학 전반에 걸친 풍부한 정보를 담았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분포하는 짧은 회문 반복서열’(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의 약자인 ‘크리스퍼’(CRISPR)는 DNA의 특정한 서열을 인식해 자르고 편집하는 기술을 말한다. 여기서 회문은 ‘소주 만 병만 주소’ 또는 ‘다시 올 이월이 윤이월이올시다’처럼 앞이나 뒤로 읽어도 동일하게 읽히는 문장 구조를 일컫는다. 유전자에도 회문구조로 불리는 서열이 존재한다. 저자는 “좁은 의미에서의 편집이 틀린 글자나 띄어쓰기를 고치는 작업이라면, 크리스퍼는 그 편집기술에 덧붙여 틀린 글자가 어디쯤 있는지도 감지하는 능력”이라고 부연한다.

DNA는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사이토신) 등 4가지 알파벳이 서로 쌍을 이루어 길게 나열된 서열이다. 이 서열에는 생명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이 서열 중 일부는 회문구조를 띠는데, DNA의 표식자 역할을 하며 그 부위를 인식하는 단백질과 함께 세포의 활성을 조절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불리는 제3세대 유전자 편집기술은 특정 부위의 DNA를 찾아내 절단하고 원하는 유전자를 끼워 넣을 수 있다.
동아시아 제공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회문구조로 된 DNA의 특정 부위를 찾아내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RNA’와 해당 부위를 수술 메스처럼 정확하게 잘라내는 ‘Cas9’이란 절단효소로 이뤄져 있다. 생명공학자들은 원하는 DNA에 상응하는 RNA를 합성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실제 가위처럼 DNA를 편집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박테리아가 내부로 침투한 바이러스 유전자를 찾아낸 뒤 잘라내는 식으로 진화시킨 면역기능을 모방한 기술로, 박테리아를 공격하는 박테리오파지라는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탄생했다. 앞서 1990년대 중반부터 ‘ZFN’과 ‘TALEN’이라는 1·2세대 유전자가위가 쓰였지만, “정확하고 빠르며 값이 싼” 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혁명적이라는 평가다.

저자는 유전자가위를 인류의 획기적 발명품인 ‘바퀴’에 비유하면서 1·2세대 가위가 달구지나 자전거 바퀴라면 3세대 가위는 시속 100㎞로 질주하는 승용차 바퀴에 비견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향후에는 유전자가위가 에이즈의 원인인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슈퍼박테리아, 간염바이러스, 독감바이러스,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조현병(정신분열증) 등 유전자와 결부된 수많은 질병의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저자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통해 모기를 멸종시키는 것에 대해 “모기의 있고 없음에 대해서조차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는 “동물의 배아를 다루는 분야에 적용되는 유전자 제어 기법은 윤리적 함의가 필요한 것”이라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엄청난 파급력은 예상치 못한 결과와 함께 실체를 드러낼 날이 머지않았다”고 전망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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