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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줄서기, 줄 세우기, 공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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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10 20:59:54 수정 : 2017-11-10 23: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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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수 가르쳐주지 않는 입시는 / 줄을 서지 않는 난장판과 같아 / 공정한 경쟁과 질서를 위해선 / 정신적 줄서기도 받아들여야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의 줄서기 문화가 그리 자랑할 만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1992년 영국에 유학 갔을 때 어느 장소에서도 항상 가지런히 줄을 선 영국인의 모습이 신기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 지하철, 버스정거장, 화장실 등 어느 곳에 가도 줄을 잘 선다. 은행이나 관공서 등에서 뽑는 대기순번표도 줄서기의 한국적 변용이겠다. 누구나 은행에 가면 먼저 두리번거리며 대기순번표 기계를 찾는 것을 보면 이제 줄서기는 체화됐다고까지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가 육체적 줄서기만큼 정신적 줄서기에도 익숙해져 있을까. 어릴 때부터 줄서기 교육을 받는 것은 공정함에 대한 교육의 일환일 것이다. 앞선 사람이 먼저 필요한 서비스를 받는 것은 약속을 준수하는 것을 통해 공정함을 지키고, 이를 통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육체적으로는 줄을 잘 서도 정신적인 줄서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결국 사회의 공정함과 질서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대학입시철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되면 수십만 명의 학생이 수년간의 노고를 평가받기 위해 새벽부터 떨리는 가슴을 안고 앞으로 계속될 인생에서의 가혹한 시험대에 설 것이다.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나마 이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말은 공정하게 평가받을 것이고, 줄서기는 공정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말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입시는 안타깝지만 줄서기이자 줄 세우기이다. 들어가고 싶은 대학이나 학과 정원보다 지원자가 많으면 가혹하지만 지원 학생들을 줄을 세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주관적인 평가라 하더라도 줄은 세워야 하고, 그래야 학생을 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착한 학생을 뽑는 전형이라 하더라도 10명 뽑는 데 30명이 지원했다면 착한 학생 1등부터 30등까지 줄을 세워야 하고 그 줄에 전형이라는 이름으로 빨간색 줄을 그어야 한다. 10등과 11등 사이에, 그리고 아마도 20등과 21등 사이에. 합격, 예비합격, 불합격이 나눠지는 가혹한 줄긋기이다. 이 선을 그을 때마다 학생들이 어른거려 마음 편한 입학전형관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입시에서 줄서기, 줄 세우기를 없애고 싶은 심정이 충분히 이해 간다.

그런데 한편으로 줄서기가 없어지면 공정함과 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줄 세워진 학생이 안타까워 줄을 없애면 학생들에게 반드시 지켜야 할 공정한 경쟁의 약속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줄을 세우는 원칙은 다양할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마주치는 줄서기는 선착순이라는 줄서기이다. 먼저 온 사람이 가장 앞에 서고, 가장 먼저 원하는 서비스를 받는다. 그리고 줄서기를 어기는 사람은 새치기라고 비난받고 머쓱해하면서 자기 자리에 돌아가야 한다.

전인한 서울시립대 교수·영문학
물론 입시에서 선착순 줄서기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원칙에 의한 줄서기 자체는 입시의 공정함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일 수밖에 없다. 별 차이가 안 나는 학생을 어떻게 1, 2 ,3등으로 줄을 세울 수 있는가, 한 예로 영어 실력이 다 거기에서 거기인데, 왜 학생들을 영어실력에 따라 줄을 세우는가 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회의가 들 수 있다. 그러나 등수를 매길 수 없는, 아니 가르쳐주지 않는 입시는 아무도 줄을 서지 않아 아무도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난장판과 같게 된다. 수년간 고생한 학생이 안쓰러워 줄을 안 세우려다 공정한 경쟁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이야말로 잘못된 선의가 악의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감히 말하고 싶다. 한국 사람의 줄서기 문화는 이제 잘 정착돼 있다. 아무리 용무가 급해도 누구도 함부로 화장실 앞의 줄서기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정말 급하면 양해를 구할 뿐이다. 그렇다면 공정한 경쟁과 질서를 위해 힘들지만 정신적 줄서기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닐까. 수능을 끝내고서 어머니를 보고 서러워 울음을 터뜨리는 학생들에게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전인한 서울시립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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