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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13 20:57:44 수정 : 2017-11-13 20:5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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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기에 허망하기만
죽음이란 사건, 삶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겨울로 가는 환절기라서 그런지 부음이 잦다. 예감한 죽음이든, 예기치 않게 찾아온 죽음이든, 죽음 소식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옷깃을 가다듬게 하고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특히 가까운 분들의 죽음은 그 슬픔의 심연이 한없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인지상정이다. 문득 이해인 수녀의 시 ‘하관’을 떠올린다.

“삶의 의무를 다 끝낸/ 겸허한 마침표 하나가/ 네모난 상자에 누워/ 천천히 땅 밑으로 내려가네// 이승에서 못다 한 이야기/ 못다 한 사랑 대신하라 이르며/ 영원히 눈감은 우리 가운데의 한 사람// 흙을 뿌리며 꽃을 던지며/ 울음을 삼키는 남은 이들 곁에/ 바람은 침묵하고 새들은 조용하네/ 더 깊이, 더 낮게 홀로 내려가야 하는/ 고독한 작별인사.(…)”

이승에서 못다 한 이야기,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기에 죽음을 통한 작별은 허망하기만 하다. 차디찬 땅의 침묵으로 인해, 그 작별인사는 철저히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애도의 슬픔에 사로잡힌 영혼들에게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자크 프레베르는 위로의 노래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의 시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죽은 나뭇잎의 장례식에/ 두 마리의 달팽이가 조문하러 길을 떠났다네.”

어느 맑은 가을날 저녁에 문상 길을 떠났는데,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봄이 되었고, “죽었던 나뭇잎들은/ 모두 부활”한 상태여서 달팽이들은 크게 실망한다. 애도의 실패로 인해 슬픔에 빠진 달팽이들에게 해님은 “이제 상복을 벗고 당신들에게 맞는 색깔/ 삶의 색깔을 다시 입으세요”라고 말한다. 죽음을 넘어선 삶의 색깔을 입으라는 해님의 권유에 귀 기울이자 모든 게 변화된다. “그러자 모든 동물들/ 나무들과 식물들이/ 노래 부르기 시작했네/ 살아 있는 진짜 노래를/ 여름의 노래를 불렀네/ 그리고 모두들 마시고 모두들 건배했네/ 아주 아름다운 밤이었네/ 그러고 나서 달팽이 두 마리는 집으로 돌아갔네/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아주 감동했네/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아주 행복했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허롭게 넘나들던 장자(莊子)풍의 어떤 경지를 떠올리게 한다. 내면 깊숙한 곳에 침잠해 있는 마음의 소리를 생생하고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데 능란한 장기를 보였던 프레베르다운 발상법이다. 실존적 죽음의 빛을 초극하고 자연의 순환 재생 원리에 귀의하고자 하는 것도 우리 내면의 소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또 다른 내면의 소리들이 복합적으로 경합하고 있기에 애도작업은 결코 간단치 않다.

햄릿이 죽은 아버지 유령의 소리를 듣고 엄청난 실존적 고뇌에 빠지듯이, 파우스트가 죽음을 앞두고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하듯이, 죽음이란 사건은 인간 삶에서 가장 어려운 난제인 것 같다. 단테의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보여주었던 행복한 죽음에 이르는 길도 아득하기만 하다.

어쨌거나 죽음은 삶을 더 진지하게 성찰하게 한다. 고인의 사랑과 이야기를 기억하며,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에서 고인의 부활이 체현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래야 고독한 작별인사의 비애를 조금은 덜 수 있겠기 때문이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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