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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미수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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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16 16:31:07 수정 : 2017-11-16 16: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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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3년 만에 육지로 옮겨지고 미수습자 9명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이 7개월간 이뤄졌지만, 아직까지 5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야 할 미수습자는 단원고 2학년 학생이었던 박영인·남현철군, 단원고 양승진(사고 당시 59세) 교사, 부자지간인 권재근(사고 당시 51세)씨와 권혁규(사고 당시 7세)군이다.

2남 중 막내인 박영인군은 성격도 발랄하고 쾌활해 부모님에게 딸 같은 아들이었다. 주말마다 부모님 여행에 따라나서는 살뜰한 아들이기도 했다.

영인군은 만능스포츠맨으로 통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와 야구 등 구기 종목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볼링부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축구를 좋아했고 체대로 진학해서 좋아하는 운동을 계속하고 싶어 했다.

영인군의 어머니는 사고 전 아들이 “축구화를 사달라”고 했지만, 사주지 못한 게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며 사고 이후 새 축구화를 진도 팽목항에 가져다 놓고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영인군과 같은 반이었던 남현철군은 5반 고(故) 이다운 군의 자작곡 ‘사랑하는 그대여’를 작사했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현철군은 기타실력도 상당했다.

가족들은 팽목항에 기타 하나를 세워두고 현철군의 귀환을 기다렸다. 기타에는 ‘아빠, 엄마는 죽을 때까지 너랑 함께 살거야.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가족의 간절함이 적혀 있다.

영인군과 현철군의 부모는 친하게 지내며 경기 안산에서 진도, 목포를 오갈 때 자주 동행했다. 양승진 교사는 학생들에게 듬직한 선생님이었다.

사고 당일 선체가 기울자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벗어주고 학생들이 있는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3년 만에 세월호가 물 위로 첫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양 교사와 아내 유백형씨의 33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80대 친정어머니를 모시는 아내 유씨는 세월호가 인양되고 나서도 수색 현장을 지켜왔다.

유씨는 아버지처럼 훌륭한 교사가 되고 싶다며 임용시험 준비를 하는 딸과 은행원이 된 아들의 소식을 남편에게 가장 먼저 전해주려고 한다.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군은 온 가족과 제주도로 이사를 하던 길에 슬픈 이별을 하게 됐다. 권씨 가족은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세월호에 승선해 제주도 새집으로 이사하는 길이었다. 막내딸은 사고 당시 구조됐고 베트남 출신 권씨의 아내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평소 한살 어린 여동생을 끔찍이 아낀 혁규군은 사고 당시 어머니를 도와 여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탈출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목포=한승하 기자 hsh6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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