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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차 안 삽니다. 수리는 어떻게 하라고요….”

얼마 전 방문한 미얀마에서 가이드에게 ‘국산차 보기가 어렵다’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미얀마는 문민정부 출범 이듬해인 2012년 차량수입 제한을 풀면서 양곤에 교통체증이란 단어가 생길 만큼 차가 급증했다. 쏘나타 신형이 억대에 팔리는 고세율의 마법도 사라졌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1300달러를 밑도는 동남아 최빈국에서 신차는 여전히 수만달러대 고가품이다. 그렇다보니 ‘겨우 굴러만 다니는’ 폐차급 수입 중고차, 특히 일본산이 밀려들었다. 양곤 내 자동차 중 80%는 도요타, 10%는 혼다·스즈키 등 다른 일본 브랜드, 나머지가 다른 국가 브랜드다. “그 귀한 걸 사는데 부품도 못 구하면…”이란 반문은 당연하다.

동남아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는 ‘아세안 자동차시장 현황과 주요 이슈’ 보고서에서 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필리핀·베트남 등 동남아국가연합(ASEAN) 주요 5개국 자동차시장을 “일본 업체가 사실상 지배한다”고 밝혔다. 일본 업체 점유율(2016년 기준)이 78.2%에 이르고, 아세안 최대 시장인 인도네시아는 98.6%에 달해서다. 이런 지배력은 1977년 일찌감치 ‘후쿠다 독트린’이란 대동남아 정책과 함께 뛰어든 결과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둘을 합해 4.2%다. 일본의 높은 벽이 실감난다.

조현일 산업부 차장
하지만 이곳은 기회의 땅이다. 경제성장률만 해도 주요 5개국은 3∼5%대, 미얀마 등 저개발국은 6% 이상을 예고한다. 특히 이들은 경제 발전의 주요 수단으로 자동차산업을 택했다. 연구소는 “주요 5개국 자동차시장이 향후 5년간 연평균 5.6% 성장해 2022년이면 462만대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 기반이 가장 발달한 태국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을 모색 중이고 필리핀과 베트남은 취약한 산업 기반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지금 현대·기아차는 G2(중국·미국)에서 실적이 고꾸라지며 근원적인 경쟁력에 의문이 제기된다. 정의선 부회장이 한창 공들이는 미래차만큼 중요한 것이 신시장 개척일 것이다. 마침 미국업체는 아세안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 GM은 글로벌 사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신흥시장용 콤팩트픽업 개발을 종료했고 포드는 판매부진 끝에 인도네시아에서 철수했다. 새 정부도 힘을 싣고 있다. 9일 한국·인도네시아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정부가 체결한 3개 양해각서(MOU)에서 자동차분야 협력안을 담은 산업협력 MOU가 눈길을 끈다. 내년부터 아세안 국가 간에 역내 생산품은 무관세로 전환되는데, 최대 교두보를 확보하게 됐다.

한국과 같은 우측통행 도로인데도 일본차가 점령한 미얀마는 올해서야 운전석이 우측에 달린 중고차 수입을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국민 안전,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내걸었지만 사실상 일본 중고차 판매를 금지한 것이다. 잠재력만큼은 아세안 최대인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문득 정 부회장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만나는 상상을 해본다. 여든이 넘어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기업가 양성에 매진 중인 그에겐 극일(克日)의 혜안이 있을까. 동남아에서 대우와 대우인은 여전히 건재한 신화였다.

조현일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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